<부활 제3주간 화요일>(2010. 4. 20. 화)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요한 묵시록을 보면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묵시 21,22).”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따로 성전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성경도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전례도, 예배도 없을 것입니다. 사제도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전도, 성경도, 전례도, 교계제도도 모두 임시적인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하느님 나라로 가기 위해 필요할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성경 원본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오래된 성경은 전부 다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들뿐입니다.
순수한 성경 원본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만일에 성경 원본이 발견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성경 원본을 너무 신성하게 여기다가
그 자체를 하나의 우상처럼 섬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잘못 해석하고 번역했던 것들이 모두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은 좋지만.)
비슷한 예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계약의 궤”,
십계명을 새긴 돌판, 만나를 담아 놓은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
발견된다면, 아마도 그것들을 우상처럼 섬기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찬 때 사용했던 성배, 옷, 원래의 십자가, 가시관,
그 외에 예수님이 직접 사용하신 물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내용과 주제가 바로 그런 것이었지요.)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태도를 줄곧 비판하셨습니다.
만나를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
율법을 정해 준 이는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
성전이나 제물이나 예배보다 하느님이 더 중요하다는 것.
씻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씻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는 것......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그런 임시적인 것,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들만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비판하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모세가 절대적인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권위를 부정하는 발언들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미움을 받는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모세가 아니라 모세를 보내신 하느님을 바라보라는 것이 예수님의 의도였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요즘에도 그런 일은 자주 반복되고 있습니다.
임시적인 것들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고서 그것에 집착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종파의 경우를 지적하고 비판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도 반성해야 할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교계제도의 권위와 권한 때문에 생기는 갈등들은
유대인들이 모세를 절대적으로 여긴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성경을 읽는 프로그램에 집착하는 모습들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동안 개발된 많은 성경 읽기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독서, 무슨 성서, 또는 성서 무엇무엇 등의 이름을 가진 프로그램들......
그런데 그것들을 모두 비교해보면 거의 비슷한 방식입니다.
성경을 일정하게 나누어서 꾸준히 읽거나 해설을 듣고,
그 다음에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말씀 나누기를 하고...
도대체 프로그램들 사이에 이름 말고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고 의아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지역이나 계층이나 여건에 따라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하나만을 고집하면서 그 방식으로만 해야 한다고 강요하면
정말 중요한 것은 놓치고 껍데기에 집착하는 것이 됩니다.
읽으라는 성경은 안 읽고, 프로그램 개발자가 만든 설명서만 읽는 모습들,
하느님 말씀에 집중은 안 하고 말씀 나누기만 신경 쓰는 모습들,
수박 겉핥기식의 단기 연수 과정만 거치고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모습들......
어디 성경 읽기 프로그램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전례의 근본정신과 취지는 알지 못한 채 세세한 규정들만 따지는 모습들,
아니면 반대로 융통성이라는 미명하에 너무 소홀한 태도로 전례에 임하는 모습들...
모세만 바라보고 모세를 보내신 하느님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또 하나의 우상 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세는 아주 겸손해서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느님이 아니라 모세만 바라보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껍데기에 집착하는 신앙은 우상숭배나 미신으로 흐르는 법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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