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Catholic/강론, 복음묵상, 권고, 연설

[스크랩] 부활제3주간월요일(100419.월)

김대철대철베드로 2010. 4. 19. 08:54

<부활 제3주간 월요일>(2010. 4. 19. 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단에 집착하면 목적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편안하게 갑니다.

어떤 사람은 낡은 고물 자동차를 타고 어렵게 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힘들게 갑니다.

어떻든 목적지를 향해서 가긴 갑니다.

 

고급 승용차에 올라탔다고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닙니다.

차에 올라탔으면 목적지를 향해 달려야 합니다.

고급 승용차라는 것에 도취되어서 그냥 길에 세워두고 자랑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입니다.

 

낡은 고물 자동차나 자전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부끄럽다고, 타기 싫다고 그냥 버리고 포기한다면

고급 승용차를 세워두고 자랑만 하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좀 불공평하긴 하지만, 수단은 수단이고 도구는 도구일 뿐입니다.

 

옛날에 “잘 살아보세.” 라는 구호를 내걸고

경제개발에 전력을 다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땐 정말 배가 고팠습니다. 우선 먹고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조금 형편이 나아지니까 “삶의 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나아지긴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그때보다 더 행복해진 것 같지 않습니다.

삶의 질이 향상되어도 목적을 잃어버렸다면 불행합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그들은 지도자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했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팠습니다.

사람들은 배고픈 자유인이 되기보다는 배부른 노예가 낫겠다고 투덜거렸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무려 사십 년 동안이나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것은 홍해 바다가 갈라진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기적입니다.

그러나

“만나”라는 것이 아무리 하늘의 음식이고, 놀라운 기적이라고 해도

그건 광야에서의 임시 음식일 뿐이었습니다.

그걸 먹자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농사를 짓고 곡식을 추수하자 더 이상 “만나”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만나”는 임시방편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면 아무리 고급 승용차라고 해도 차에서 내려야 합니다.

 

왜 사느냐? 라고 질문하면 사람마다 대답이 전부 다릅니다.

각자 지향하는 목적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죽지 못해서 그냥 산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몹시 불행하다는 뜻이겠지요.

반대로,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대답 대신 빙그레 웃는 사람도 있고...

(정말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각자 지향하는 목적지가 다른 것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잘 살펴보면 그건 그냥 표현의 차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산다고 대답하는 신앙인도 있고,

자녀들을 위해서 산다고 대답하는 부모님들도 있고,

학문을 위해서 산다고 대답하는 학자도 있고,

예술을 위해서 산다고 대답하는 예술가도 있고...... 하여간에 무엇이 되었든...

뭔가 지금보다 더 위에 있는 어떤 가치를 위해서 사는 것은 같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육체적인 욕망을 위해서 본능대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종족보존 본능과 생존 본능만을 위해서 산다면... 사람이 아니라 동물입니다.

 

물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우선 먹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고,

죽을 위험에 있다면 우선 살아나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그 다음 단계가 없다면, 그냥 거기서 딱 멈춰버린다면,

사람이 먹고산다는 것의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인생의 목적이 예수님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는 것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지까지 가는 수단과 방식이 각자 다를 수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단(방식)을 목적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잘 먹고 잘살고, 좀 더 편안하게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건 그냥 수단일 뿐입니다. 그건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질 것을 얻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비싼 것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비싼 명품이라고 해도 썩어 없어질 것인데.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 Fr.송영진 모세
글쓴이 : Fr 송영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