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의 집이나 헌혈차에서 헌혈한 피는
혈액원으로 간다. 혈액을 요청한 병원에 공급하기에 앞서 검사와 제조를 거치기 위해서다. 수혈 환자에게 안전한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선 이 과정이
중요하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중앙혈액원. 하루 3차례 오전 11시, 오후 3시, 저녁 7시께 헌혈한 피를
수거한 헌혈차가 들어오면 혈액이 들어오고 나가는 공급실부터 바빠진다.
헌혈의 집, 군부대 등 헌혈이 이뤄진 여러 현장에서
수거해온 혈액량이 맞는지 확인하고 헌혈기록 카드 내용을 전산 입력하는 이들 손놀림이 분주하다. 신속하게 작업이 끝나자 헌혈 혈액을 담은 주머니는
제제실로, 헌혈 전 약간 채혈해 담은 작은 시험관(혈액 견본)은 검사실로 각각 넘어간다. 혈액을 성분별로 분리 제조하는
제제실에는 저울과 원심분리기가 즐비하다. 먼저 혈액주머니 무게를 측정해 기록하고 이상 여부를 살핀 뒤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린다. 그러면 비중이
무거운 적혈구는 아래쪽에 가라앉고, 바로 그 위에 백혈구가 얇은 층을 형성한다. 맨 위층이 혈장이다.
1차 원심분리를 통해
적혈구농축액(PRC), 혈소판풍부혈장(PRP), 백혈구농축액(LC)을 만들고 2차 원심분리로 혈소판농축액(PC), 세척적혈구(WRC),
백혈구제거 적혈구(LRPRC) 등을 제조한다. 채혈 후 6시간 이내 신선한 혈액에서 혈장성분만 분리해 혈장을 급속동결(섭씨 영하 40도
이하)시킨 신선동결혈장(FFP)과 같은 혈액제제도 있다.
이러한 혈액성분제제는 보존온도나 유효기간, 효능이 다 다르다. 빈혈 등
적혈구 부족이나 기능저하 환자에게 사용되는 적혈구 농축액은 채혈 후 35일간 섭씨 1~6도에서 보존 가능하지만 혈소판 감소증 환자나 급성백혈병
환자 등에 사용하는 혈소판 농축액은 제조 후 5일간 섭씨 20~24도에서 보존된다. 복합성응고인자 장애 환자에게 사용되는 신선동결혈장은 제조 후
1년간 영하 18도 이하에서 보존 가능하다.
혈액성분제제 중 적혈구농축액과 신선동결혈장, 혈소판농축액이 수요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큰 수술이나 외상 등 대량 출혈에 사용하는 전혈제제는 순수한 혈액성분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항응고제가 들어가 있는
보존혈액이다. 과거엔 수혈이라고 하면 전혈 수혈을 의미했지만 환자에 따라 필요한 성분만을 수혈하는 성분헌혈이 일반화하면서 전혈 혈액 사용 비중은
높지 않다.
이 혈액제제들은 수혈용으로, 수혈용을 제외한 혈장은 충북 음성 혈장분획센터로 보내져 의약품으로
제조(혈장분획제제)된다. 이 혈장분획제조 원료인 혈장은 국내 헌혈량으론 부족해 아직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제실에서 작업을
다 마친 전혈제제와 혈액성분제제는 다시 공급실로 가서 혈액제제가 필요한 병원으로 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탈락하는 혈액제제도 극히 일부가 있다.
제제실에서 성분제제를 진행하는 시간에 검사실에서는 혈액 견본으로 헌혈한 혈액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검사가
이뤄진다. 그 검사에 합격해야 수혈용 제제 혈액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검사 결과는 헌혈자에게도 알린다.
검사는
ABOㆍRh 혈액형, B형ㆍC형 간염, 간기능, 매독, 말라리아, 에이즈 등에 대해서 한다. B형ㆍC형 간염 검사의
경우 모두 음성이 정상이다. 양성은 간염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 있다는 표시로 각 검사에서 이런 양성
반응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그 헌혈자의 제제 혈액은 수혈용으로 불합격, 폐기된다.
혈액검사를 통해 적격으로 판정된 혈액은 혈액을
요청한 병원으로 나간다. 그리고 병원 혈액은행에 잠시 보관됐다가 마침내 필요한 환자에게 수혈돼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다한다.
그런데 혈액검사를 통과한 뒤 뒤늦게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지난해 7월 복지부 혈액검사실태조사 결과 음성으로 출고한혈액에서 B형,
C형 간염 감염자가 발생하고, 양성 혈액을 음성으로 잘못 판정한 혈액 사고가 있었다. 항체 미형성기(잠복기) 중인 에이즈 감염자가 헌혈한 혈액을
출고해 감염자가 발생하는 사고도 일어났었다.
이런 사고 후 혈액사업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각 혈액원에 검사결과에 대해
이중 확인 과정 등을 거치는 검사 시스템과 검사용 장비 마련 등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잠복기를 22일에서
11일로 단축할 수 있어 혈액검사 필수 장비로 여겨지는 핵산증폭검사(NAT) 장비 도입 등이 거론됐으나 워낙 가격이 비싸 정부 지원 없이는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검사혈액원 3곳에만 NAT 장비가 설치되어 시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호주 등 일부 선진국은 이미
NAT를 실시하고 있다.
중앙혈액원 최병찬 제제과장은 "NAT도 기간을 단축할 뿐이지 100% 완전한 방법은 아니다"며
"무엇보다 헌혈자의 자세와 혹시 미심쩍을 때 자신이 헌혈한 피를 다른 사람이 수혈하지 않도록 하는 '자진 배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헌혈이 중요한 만큼 안전한 혈액을 환자에게 공급하는 일도 중요하다. 헌혈과 혈액관리 모두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는
인식에서 다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연숙 기자mirinae@pbc.co.kr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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