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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는 인간 -3- 서론

김대철대철베드로 2004. 7. 17. 10:19

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인사와 더불어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

   노동을 하여(Laborem Exercens) 인간은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얻어야 하고1) 과학과 기술의 끊임없는 진보에 이바지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한 가족인 형제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회의 문화적, 도덕적 수준을 끊임없이 들어높이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노동이란 그 성격이나 환경이 어떻든간에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어떤 행위를 뜻한다. 즉, 인간성 자체로 인하여 그리고 본성으로 타고나 인간이 할 수 있는 수많은 행위들 가운데 노동으로 인식될 수 있고 또 인식되어야 하는 인간의 어떤 활동을 뜻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우주 안에 창조되었으며,2) 땅을 다스리도록 그 안에 안배되었다.3) 그래서 태초부터 인간은 노동을 하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노동이다. 다른 피조물들이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행동은 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노동을 할 능력이 있으며, 오직 인간만이 노동을 하며, 동시에 노동을 통하여 자신의 지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은 인간과 인간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표시이며, 인격체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 움직이는 개개의 인격체를 나타내는 표시이다. 그리고 이 표시는 인간의 내면적 특성을 결정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본질 자체를 형성한다.

I. 서 론

[새로운 사태] 반포 90주년을 맞는 오늘날의 인간 노동

    1. 1981년 5월 15일은 위대한 교황 레오 13세의 사회 문제에 관한 회칙, 즉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라는 말로 시작되는, 극히 중대한 회칙이 반포된 지 90주년이 되는 기념일이었다. 이날을 기념하여, 본인은 이 문헌을 인간의 노동에, 나아가 광범위한 노동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바치고자 한다. 로마 성 베드로좌에서 본인의 봉사직을 시작하며 펴낸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에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헤아릴 수 없는 구원의 신비 때문에 인간은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하는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길이다.”4) 그래서 이 길로 끊임없이 돌아와야 하며, 다양한 양상들 속에서 항상 새롭게 그 길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양상들 속에서 그 길은 모든 부와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든 노고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동은 이러한 양상들 가운데 하나로,
항구하고 근본적인 것이며, 항상 적절한 것으로서 새로운 관심과 결정적인 증거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다. 새로운 질문들과 문제들이 늘 솟아나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희망이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인간 실존의 기본 영역에 따르는 새로운 두려움과 위협도 있다. 인간의 생활은 매일 노동으로 이루어지며, 노동에서 인간은 그 독특한 존엄성을 얻는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은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노고와 고통을 동반하고, 또한 개별 국가와 국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회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들어오는 해악과 불의도 안고 있다. 제 손으로 일하여 얻은 빵을 먹는다5)는 것도 진리이지만 - 이 말은 육신 생활을 영위시켜 주는 일용할 양식뿐 아니라 과학과 발전, 문명과 문화의 양식도 뜻한다 - “이마에 땀을 흘려”6) 얻은 이 빵을 먹는다는 것도 영원한 진리이다. 말하자면 개인적인 노력과 노고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각 사회와 또한 전인류의 생활을 어지럽게 하는 긴장과 충돌 그리고 위기들 속에서 얻는 빵을 먹는다는 말이다.
    기술, 경제, 정치적 여건에서 새로운 발전이 일고 있는 이즈음,
우리는 맛새로운 사태맜 반포 90주년을 경축하고 있다. 이 새로운 발전은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로 지난 세기의 산업 혁명 못지 않게 노동계와 생산계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일반적인 특성으로 볼 때 많은 요인들이 있다. 여러 생산 분야에 점증적으로 도입되는 자동화,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천연 자원의 고갈과 심각한 오염 현실의 증대, 수세기 동안 남에게 예속되어 왔던 민족들이 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국제 협상에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정치적 부상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과 요구들은 현대의 경제 구조 및 노동 분배 구조를 재정립하게 하고 재조정하게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변화는 수많은 숙련공들에게 실직을 안겨줄지도 모르고, 비록 일시적이나마 재훈련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가 더욱 발전된 국가들의 물질적인 풍요를 저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원인이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가난 속에서 수모를 겪으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가 인간 사회에 끼칠지도 모르는 결과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교회의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천명하고 그러한 존엄성과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들을 고발하여, 위에 언급한 변화들을 이끌어 인간과 사회의 참된 진보를 보장하는 것이 자신의 직무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사회 활동과 사회 교리의 유기적인 발전에 관해서

    2. 인간에 관한 문제인 노동은 확실히 ‘사회 문제’의 핵심을 이룬다. 위에서 말한 맛새로운 사태맜가 반포된 이래 거의 백년 간, 교회의 사도적 사명에 관련된 가르침과 많은 시도들이 특히 이 사회 문제를 향해왔다. 노동에 관한 이 회칙도 다른 노선을 따르겠다는 의도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가르침과 활동에 대한 교회의 모든 전통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시에 본인은 복음의 보고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기”7) 위하여 복음의 규범에 따라 노동에 관한 반성을 하고 있다. 인간이나 인간의 지상 생활이 옛 것이듯 확실히 노동은 옛 것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 문화, 문명 등의 그 다양한 양상들 속에서 연구 분석된 현대 세계의 전체적인 인간 상황은 인간의 노동에 관한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낼 것을 요구한다. 달리 말해서 이 분야에서 개인과 가정, 각 국가와 온 인류, 마침내는 교회 자신이 당면한 새로운 과제의 형성을 요구한다는 말이다.
    맛새로운 사태맜 반포 이래 사회 문제는 끊임없이 교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한 증거로는 역대 교황들의 많은 교서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여러 문헌들, 각국 주교단의 성명서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국제적인 차원이나 지역 교회의 차원에서 정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교황청의 주도하에 있는 여러 기구들의 활동들을 들 수 있다.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문제에 관해 표명한 모든 선언들과 그 투신은 여기서 상세하게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다. 이 분야의 모든 일을 조정하는 기구인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Pontificia Commissio a Justitia et Pace)가 공의회의 결과로서 발족되었는데 각국의 주교회의는 이에 부응하는 기구들을 갖추고 있다. 이 기구의 이름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사회 문제가 전체적이고도 통괄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세계에서 정의에 대한 투신은 평화에 대한 투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이중의 투신은 지난 90년 동안 많은 유럽 국가들과,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다른 대륙의 국가들을 괴롭힌 양차 대전에서 얻은 쓰라린 체험으로 확실히 뒷받침되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이래 점증하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그로 말미암아 무시무시한 자기 파멸에 대한 전망은 이 이중의 투신을 뒷받침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교회의 최상 교도권으로 반포한 문헌들이 발전되어 온 주요 노선을 살펴본다면 바로 이러한 문제에 관한 언명들이 그 안에 명백히 천명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세계의 평화에 관한 문제라면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에 그 주요 핵심이 있다. 누구든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한 발전상을 연구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첫 시기는 회칙 [새로운 사태]가 반포된 때부터 비오 11세의 회칙 [사십주년] (Quadragesimo Anno)가 반포될 때까지로, 이 시기의 교회의 가르침은 ‘노동자 문제’를 각 국가들 내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 다음 시대에는 같은 가르침이 그 지평을 더 넓혀 ‘노동자 문제’가 전세계 안에서 다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빈부의 불균형한 분배, 발전된 국가와 대륙 그렇지 못한 국가와 대륙 간의 차이는 평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모두에게 정당한 발전이 보장되도록 그 방법을 찾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그리고 바오로 6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등에 나타나는 가르침의 골자이다.
    이와 같이 사회 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임무가 발전되어 온 추세를 살펴보면 사태의 상황을 매우 적절하게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계급 문제가 사회 문제의 핵심으로 특히 부각되었으나 최근에 와서는 세계 문제로 그 강조점이 바뀌었다. 그래서 이제는 계급에 관한 것만이 주의를 끄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불평등과 불의에 관한 것들이 주의를 끌게 되었다. 그 결과 계급 문제뿐 아니라 현대 세계에서 정의를 구현시키기 위해 이행해야 할 임무에 관한 문제가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대두되게 되었다. 현대 세계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사회의 불의에 대한 종전의 분석 의미를 더욱 심원하고 더욱 충만하게 드러낸다. 지상에 정의를 구현시키도록 노력하는 일이 오늘에 주어진 과제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불의한 구조들을 감출 것이 아니라 더욱더 보편적인 차원에서 검토하여 변혁시키는 일이 요청된다.

노동 문제는 사회 문제의 관건

    3. 사회의 객관적인 현실을 진단하든지 복잡 다단한 사회 문제의 영역에서 교회가 그 가르침을 펴든지 이러한 모든 과정들 속에서 인간의 노동에 관한 문제는 자연히 빈번하게 대두된다. 이 문제는 사회 생활에서도 교회의 가르침에서도 이제는 불변의 요소가 되었다. 더욱이 교회의 이러한 가르침 속에 노동 문제가 언급된 것은 훨씬 오래된 일로 최근 90년 동안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실상 교회의 사회 교리는 그 근원을 성서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특히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간에 두고 있다. 처음부터 사회 문제는 교회의 가르침에 속해 있었다. 교회는 사회 속에서 인간과 생명을 인식했으며 특히 각기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사회 윤리를 다루었다. 이러한 전통적인 유산은 맛새로운 사태」를 필두로 하여 현대의 ‘사회 문제’에 관한 교황들의 가르침에 의해 상속되고 발전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노동 문제에 관한 연구는 영원하다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진리가 유지되는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루어져 온 것이다.
    본 회칙에서 이 문제에 관해 다시 한번 거론하는 것은 - 어쨌든 이 문제에 관한 모든 것을 다 다룰 뜻은 없다 - 교회가 이미 가르쳐온 것을 단지 총정리하고 반복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쩌면 전보다 더 이 문제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 문제를 인간의 선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때, 인간의 노동은 사회 문제 전체에 대한 관건, 아니 어쩌면 본질적인 핵심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발생하고 날로 복잡해지는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 또는 점진적인 해결책을 “인간의 생활을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8)는 명제 아래 찾아야 한다면 그 핵심인 인간의 노동은 근본적이고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띠게 된다.

1. 시편 127(128),2; 창세 3,17-19; 잠언 10,22; 출애 1,8-14; 예레 22,13 참조.
2. 창세 1,26 참조.

3. 창세 1,28 참조.

4.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맛인간의 구원자맜, 14항: AAS 71(1979), 284면.

5. 시편 127(128),2 참조.

6. 창세 3,19.

7. 마태 13,52 참조.

8. 사목 헌장, 38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