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본당에서 열심히 활동하신 교우라면 ...연도를 해보신 경험이 많으실것 입니다....연도간다...연도대회를 성당에서 한다..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연도의 유래에 대해서는 잘모르실것 같습니다.
제가 유니텔 가톨릭 동호회 초대 대표회장 시절에 어느 형제님이 연도에 대해서 물어본것을 현재는 예수회로 입회하신 조인영 수사 친구의 답변을 올려드립니다
질문 :
연도에 관해서 제가 알고있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에만 있는 돌아가신 영혼들의 속죄를 위하여 살아있는 사람들이 주님께 바치는 기도로써, 최양업 신부님께서 만드셨고,이것이 구전으로 전해 오던 것을 누군가가 정리하였다고 하며, 연도시의 가락은 구전과정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붙여졌다고 하는데 위령성월을 맞아 정확하게 알고싶습니다. 죽은 모든 영혼들이 천주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기를 빕니다.
답변 :
일반적으로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연도라고 하지요. 그러나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 말은 연옥에 있는 이를 위해 드리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연도보다는 '위령기도'라고 쓰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비록 그 방법이나 내용이 다르다 하더라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다 드리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초기부터 임종 직전에 놓인 분들이나 혹은 고인을 위해 '천주성교예규'는 예식서에 따라 기도해 왔던 것입니다. '성교예규'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1859년 경 다블뤼신부가 한문본에서 한국실정에 맞으면서도 필요한 것만을 추려내어 번역한 것이지요. 여기에는 임종을 돕는 규식 및 임종경, 상장예절등 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이 책이 계속 보완되고 재편집되어 최근까지 쓰여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동안 사용하여 왔던 '성교예규'의 기도문들이 너무나 오래 전에 번역된 것이기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과 맞지 않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이유로 1991년 서울대교구 전례위원회는 요즈음 말로 다시 번역해서 '성교예규'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것입니다. 그 결과 구번역과 신번역사이에서 불편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리라 짐작되지만, 이는 새로 번역된 예규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쉽게 해소되리라 믿습니다. 외국에는 연도라는 것이 없지만 성무일도를 합니다. 성무일도에는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가 있지요. 그것을 해야 하는데 잘 안하니까 또 옛날의 우리 나라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연도라는것을 만들어서 가락을 맞추어 구성지게 함으로써 글을 모르는 사람도 그냥 배워서 할 수 있게 했어요.
악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내가 죽은 다음에 좋은 데 가야 된다하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처럼 그래서 이제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데 연도라고 하는 것은 시편 130장, "주여 나 깊고 그윽한 곳에서 주께 부르짖나이다" 하는 게 130장입니다. 요새는 "깊은 구렁 속에서" 이렇게 다시 번역을 했죠. 그리고 그 다음에 시편 51편이 있죠. 그 두가지를 주로 하는 것이고 다음에 성인들을 기억하면서 하는 호칭기도와 교회에서 붙인 기도들입니다. 이건 교회에서 만든 것들인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노래를 부를 때 작곡가들이 만든 대로해야만 노래는 아니죠.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흥얼거리면 그것이 바로 노래죠. 그러나 규칙적으로 음악적인 요소를 넣어서 잘 만들었을 때 좋은 노래가 되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여럿이 맞추어서 함께 잘하기 위해서 기도문을 책으로 만들어서 함께 합니다. 그럼, 왜 그럼 길게 뽑느냐? 글쎄요. 우리 나라 옛날 가락은 좀 길었고, 심청가, 춘향가 이런 거할 때 보면 상당히 길게 하고 곡조가 특이하지 않습니까? 요새 록음악이니 이런 것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조금나이 먹은 사람들이 볼 때는 방정맞은 것 같고 좀 그렇지 않습니까? 요새 사람이 볼 때는 연도가 늘어지고 참 이상하게 보이지만 옛날 우
리 나라 곡이 대개 그랬어요. 그래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성철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스님들이 죽 앉아서 염불하는 것을 봤더니 우리 연도하고 비슷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천주교회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지 2백여 년밖에 안되었거든요. 그런데 그전 고려시대에는 순전히 불교밖에 없었고, 이조시대에 와서는 숭유억불정책을 써서 유교를 많이 했지만 그래도 불교가 단연 우세했거든요. 그래서 외적인 그런 곡조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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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니텔 가톨릭 통신동호회 교리/교회QA방에서
연도에 대해서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제가 유니텔 가톨릭 동호회 초대 대표회장 시절에 어느 형제님이 연도에 대해서 물어본것을 현재는 예수회로 입회하신 조인영 수사 친구의 답변을 올려드립니다
질문 :
연도에 관해서 제가 알고있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에만 있는 돌아가신 영혼들의 속죄를 위하여 살아있는 사람들이 주님께 바치는 기도로써, 최양업 신부님께서 만드셨고,이것이 구전으로 전해 오던 것을 누군가가 정리하였다고 하며, 연도시의 가락은 구전과정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붙여졌다고 하는데 위령성월을 맞아 정확하게 알고싶습니다. 죽은 모든 영혼들이 천주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기를 빕니다.
답변 :
일반적으로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연도라고 하지요. 그러나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 말은 연옥에 있는 이를 위해 드리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연도보다는 '위령기도'라고 쓰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비록 그 방법이나 내용이 다르다 하더라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다 드리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초기부터 임종 직전에 놓인 분들이나 혹은 고인을 위해 '천주성교예규'는 예식서에 따라 기도해 왔던 것입니다. '성교예규'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1859년 경 다블뤼신부가 한문본에서 한국실정에 맞으면서도 필요한 것만을 추려내어 번역한 것이지요. 여기에는 임종을 돕는 규식 및 임종경, 상장예절등 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이 책이 계속 보완되고 재편집되어 최근까지 쓰여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동안 사용하여 왔던 '성교예규'의 기도문들이 너무나 오래 전에 번역된 것이기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과 맞지 않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이유로 1991년 서울대교구 전례위원회는 요즈음 말로 다시 번역해서 '성교예규'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것입니다. 그 결과 구번역과 신번역사이에서 불편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리라 짐작되지만, 이는 새로 번역된 예규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쉽게 해소되리라 믿습니다. 외국에는 연도라는 것이 없지만 성무일도를 합니다. 성무일도에는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가 있지요. 그것을 해야 하는데 잘 안하니까 또 옛날의 우리 나라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연도라는것을 만들어서 가락을 맞추어 구성지게 함으로써 글을 모르는 사람도 그냥 배워서 할 수 있게 했어요.
악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내가 죽은 다음에 좋은 데 가야 된다하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처럼 그래서 이제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데 연도라고 하는 것은 시편 130장, "주여 나 깊고 그윽한 곳에서 주께 부르짖나이다" 하는 게 130장입니다. 요새는 "깊은 구렁 속에서" 이렇게 다시 번역을 했죠. 그리고 그 다음에 시편 51편이 있죠. 그 두가지를 주로 하는 것이고 다음에 성인들을 기억하면서 하는 호칭기도와 교회에서 붙인 기도들입니다. 이건 교회에서 만든 것들인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노래를 부를 때 작곡가들이 만든 대로해야만 노래는 아니죠.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흥얼거리면 그것이 바로 노래죠. 그러나 규칙적으로 음악적인 요소를 넣어서 잘 만들었을 때 좋은 노래가 되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여럿이 맞추어서 함께 잘하기 위해서 기도문을 책으로 만들어서 함께 합니다. 그럼, 왜 그럼 길게 뽑느냐? 글쎄요. 우리 나라 옛날 가락은 좀 길었고, 심청가, 춘향가 이런 거할 때 보면 상당히 길게 하고 곡조가 특이하지 않습니까? 요새 록음악이니 이런 것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조금나이 먹은 사람들이 볼 때는 방정맞은 것 같고 좀 그렇지 않습니까? 요새 사람이 볼 때는 연도가 늘어지고 참 이상하게 보이지만 옛날 우
리 나라 곡이 대개 그랬어요. 그래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성철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스님들이 죽 앉아서 염불하는 것을 봤더니 우리 연도하고 비슷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천주교회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지 2백여 년밖에 안되었거든요. 그런데 그전 고려시대에는 순전히 불교밖에 없었고, 이조시대에 와서는 숭유억불정책을 써서 유교를 많이 했지만 그래도 불교가 단연 우세했거든요. 그래서 외적인 그런 곡조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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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니텔 가톨릭 통신동호회 교리/교회QA방에서
연도에 대해서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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