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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닮은 숫자 '0'

김대철대철베드로 2005. 1. 15. 19:06
예수님을 닮은 숫자 '0'
윤지섭(요셉) 하남 최선수학전문학원 원장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수'(數)와 함께 살아간다. 엘리베이터 층수, 예금통장에 기입된 잔액, 약속한 시간, 백화점 진열장에 붙어 있는 가격표, 주민등록번호…. 우리는 '수'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설까. 2500년 전 그리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세상이 '수'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수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수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좀더 편리한 계산을 위해 그 표현방법도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이렇게 수를 기록하는 방법을 '기수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보자. 1989년 세계성체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여기서 1989라는 수는 '(1×10의 3제곱)+(9×10의 2제곱)+(8×10의 1제곱)+(9×10의 0제곱)'로 전개할 수 있다. 결국 19 89라는 숫자엔 9가 두번 쓰이는데 앞부분 9는 900을, 뒤의 것은 그냥 9를 의미한다. 같은 9라도 위치에 따라서 다른 수가 되는 셈이다. 이는 10진법을 이용한 기수법 때문이다.

 동양에서도 오래 전부터 자릿수를 나타내는 단위가 정해져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에는 일(一,10의 0제곱), 십(十, 10의 1제곱), 백(百, 10의 2제곱), 천(千, 10의 3제곱), 만(萬, 10의 4제곱), 억(億, 10의 8제곱), 조(兆, 10의 12제곱), 경(京, 10의 16제곱), 해(垓, 10의 20제곱), 자(姉, 10의 24제곱), 양(穰, 10의 28제곱), 구(溝, 10의 32제곱), 간(澗, 10의 36제곱), 정(正, 10의 40제곱), 재(載, 10의 44제곱), 극(極, 10의 48제곱), 항하사(恒河沙, 10의 52제곱), 아승기(阿僧祈, 10의 56제곱), 나유타(那由他, 10의 60제곱), 불가사의(不可思議, 10의 64제곱), 무량대수(無量大數, 10의 68제곱) 까지 자릿수 단위가 실려 있다.

 무량대수 '10의 68제곱'은 10뒤에 0이 68개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빛이 1년간 가는 거리가 '9467×10의 12제곱 km'이고 우주의 나이도 약 10의 10제곱년에 불과하다. 12g 탄소 덩어리 안에 들어 있는 원자의 개수도 10의 24제곱 정도다. 10의 68제곱이 얼마나 큰 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수라고 하더라도 모든 수는 0으로부터 시작한다. 0이 없으면 진법 발달이 어림 없었고 무엇보다도 5-5=0과 같은 사칙연산도 불가능하다. 이처럼 0이 없었다면 수학은 발전이 불가능했을 정도로 0은 문명 발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0이란 기호가 누구에 의해서 언제 발견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7세기 브라마굽타라는 인도 수학자 책에 0의 성질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아라비아 숫자 '0'은 아라비아인들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아라비아에 전래된 것이다.

 0을 제외한 모든 수는 1을 이용해 나타낼 수 있다. 즉 2는 1+1, 3은 1+1+1, 4는 1+1+1+1으로 표현할 수 있다. 아무리 큰 수라도 이런 방식으로라면 표현하지 못할 수가 없다. '1'이 숫자 중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오래 전부터 1은 숫자 중의 숫자, 최고의 숫자로 생각됐다.

 0과 1을 함께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0은 어떤 수에도 더하나 마나고 1은 곱하나 마나다. 3+0=3이고, 3×1=3이다. 이처럼 0과 1은 각각 덧셈과 곱셈에서 항상 그 수를 그 수이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고상하게 말하면 0은 덧셈에 대한 항등원, 1을 곱셈에 대한 항등원이라고 한다.

 또한 어떤 수에 0을 곱하면 모두 0이 된다. 3×0=0이고 100×0=0이며 10000×0=0이다. 고해성사를 닮지 않았는가. 우리 죄를 사해주시는 예수님을 닮지 않았는가. 아무리 많고 큼을 자랑하는 수라도 0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야 한다. 내가 0을 신비스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0은 이처럼 스스로의 비움으로(0으로) 타인을 비우게(0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