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결국 믿을 것이라곤 돈뿐이다. 돈이 최고야!'라고 외치며 살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자린고비로 살았지요. 혹시라도 부인이 허락받지 않고 색다른 반찬 한 가지 준비한 날은 난리가 나는 날이었습니다. 동기생들, 또래 사람들이 다하는 계모임이나 송년회도 회비 아깝다고 한번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웃 사람들과 왕래도 쓸데없이 돈만 든다며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주말이 와도 '움직이면 돈'이라며 가족끼리 나들이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에게도 "너희들, 잘 들어둬. 이 세상에 믿을 놈은 하나도 없어. 돈이 최고야 돈이!"하고 가르쳤습니다.
평생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가 지상 최대 과제였기에 말년에 이르러서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큰 빌딩도 두 동이나 소유하게 되었고, 건물 임대료로 나오는 수입만으로도 재벌 못지않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나중에 미처 깨닫지 못한 진리를 하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돈만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돈만 있으면 만사가 오케이(OK)고, 천년만년 살 줄 알았는데, 돈으로도 안 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사(生死) 문제'였습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입니다. 죽음의 때가.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죽음 앞에서는 돈을 아무리 갖다 퍼부어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한 이름'하는 큰 병원 의사들도 방법이 없다고 하자, 전국의 이름난 한의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다"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의 건강은 하루하루 악화되었습니다. 정신도 점점 혼미해져갔고, 결국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임종 직전의 순간에 도달했습니다.
부자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그 순간은 참으로 서글픈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은 분명 애도의 순간이어야 할 텐데, 병실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재산상속권이 있는 부인이나 자녀들, 그밖에 이런저런 이유로 부자의 유산과 조금이나마 관련있는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과 기 싸움은 정말 인간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숨이 넘어간 뒤에도 귀는 얼마간 살아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 부자는 자신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쌓은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바닥으로 내려앉는 소리를 숨이 넘어가는 순간 고스란히 듣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부인들이나 자녀들, 친지들이 체면불구하고 환자 앞에서 재산권 문제로 싸우는 이유도 결국 자신이 '돈이 최고'라고 평소에 가르쳤던 결과였기에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 부자 할아버지의 인생은 맛있는 죽을 열심히 쒀서 자신은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하고 개밥통에 부어준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네 삶도 그 부자 할아버지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그렇게 기를 써서 모은 많은 재산들은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물론 자식들에게 좋은 일 한번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간 후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남게 될 것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들인 빌딩도 절대로 아닙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게 될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궁극적인 것은 우리 각자의 영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영혼의 중요성, 영혼의 우위성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위치를 재물 위에 설정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는 재물보다 훨씬 귀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번 한 주간이 되길 바랍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건전한 가치관, 인간의 고귀함과 위대함을 일깨우는 영성, 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한 관대한 마음, 인간이 지닌 무한한 정신적 능력, 하느님, 신앙, 우정, 이런 요소들이 사실 재물보다 훨씬 우위에 있음을 기억하는 이번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돈이 최고라고 여기고 돈에 집착할 때에도 우리만은 돈 그 위에 하느님이 계심을 선포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비록 가진 것 없이 살아간다 하더라도 충분히 당당하고, 충분히 만족하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세상 앞에 온 몸으로 보여주도록 노력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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