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했던 유영철 사건 이후 우리 국민의 66%는 사형제도
폐지를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기본권과 최소한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그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법이 지켜줄 수 있는 생명의 기본권은 타인의 기본권과 공존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보장될
뿐이며 절대적일 수 없으므로 살인자 인권보다는 피해자 인권이 더 소중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의 보호
또는 그에 못지않은 공익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 예외적으로 사형제도가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도 펼칩니다.
설득력이 없지
않습니다. 더욱이 유영철 사건처럼 구체적으로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우리 눈 앞에서 피해자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때에 그 범죄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정당한 것입니다. 범죄 행위 앞에 우리가 무감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범죄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에 따른 제도적
장치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형제도가 생명권 보장과 사회 안정을 위한 유일한 대안일런지요? 인간에게 같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권리가 과연 있는 것일까요? 죄를 저지른 인간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묵살하고, 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참으로 정당한 것일까요?
그리스도교 인간관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인간은 도구가 될 수 없는 하느님의 모상임을 말합니다.
존엄하고 되풀이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보듬어안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다른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주시지는 않으신 것입니다. 자기 과오를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며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할 수 없고 정의도 아닙니다. 사형은 법의 힘을 빌린 살인인 까닭입니다. 법이 사람 위에 앉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유영철씨는 사형을 구형한 검사에게 감사를 표시했다고 합니다. 그는 "어떤 명분으로도 사람 목숨을 함부로 한 잘못은
정당화할 수 없지만 저같이 사는 사람들도 잘 사는 사회가 되면 유영철 같은 사람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가 범죄자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진술이 그가 지은 죄를 덮어줄 수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세상 누구에게도 함부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점은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사형제 폐지 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지난해
방한했던 로버트 레니 쿠싱을 아시는지요? 17년전 집에 침입한 강도의 총격에 아버지를 잃었고, 참극을 목격한 어머니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인 쿠싱은 범인이 불쌍해서 용서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나는 그처럼 남의 생명을 빼앗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라면서 "사람들은 복수를 통해 마음이 편해지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고 증언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에 앞서 하느님 정의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하느님
자녀들입니다. 그 정의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을 믿는 신앙인입니다. "악에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로마 12,21) 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악을 악으로 갚거나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축복해 주십시오"(1베드 3,9)라고 요청하시지
않습니까? 그 말씀에 의지해 승리한 쿠싱 형제님 행위가 더욱 돋보입니다.
"악마에게 사로잡혀 악마의 종노릇을
하던 그들이 제 정신으로 돌아가 악마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2디모 2,26).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평화신문 2005년 1월9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