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 시절에 대학교 다닐때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하였다. 그 모임에서 알게되고 한때는 서울 장안동 지하방과 서울 신림동 지하방에서 같이 살아 만리장성을 쌓았던 19대 국회의원인 서기호 베네딕도 형제가 재판장 시절에 쓴글이다
온화하면서도 명쾌한 재판진행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서기호
2010년 1월경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법관평가를 발표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공정성 여부 등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우수법관으로 선정된 분들은 주변 동료 법관들 사이에서도 명쾌하면서도 부드러운 재판진행을 하시는 것으로 인정받는 분들로서, 패소한 측에서도 재판진행에 만족감을 넘어서 감동까지 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1). 또한 공통적으로 제시한 법관들의 언행상 문제점은 사건에 대한 예단과 편파적 재판(32%), 고압적 태도나 모욕(30%), 무리한 조정 유도(12%)라고 하는데,2) 적어도 이러한 세가지가 재판장의 자세로서 부적절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편 2005년경 이용훈 대법원장님이 취임한 이래, 재판과정에서 법정언행과 대화법 등을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많이 있었는데, 다분히 의무감에서 비롯되고,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고쳐야할 습관 지적, 일회적인 행사에 그치는 한계가 있었다. 아직까지 근원적인 원인분석과 교정을 위한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인 연습, 교육과정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최근 버릇없다 사건3)처럼 여전히 법정언행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필자 역시 나름대로 잘못된 습관을 고쳐보려 노력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변호사들의 법관평가에 대하여서도 어차피 천성적으로 원만한 성품을 타고난 분들 이야기로서,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여겼었다.
그러던 중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내용이 좋은 것 같아서 한국비폭력대화센터(http://www.krnvc.org)의 6주간 교육과정(매주 한번 3시간씩)에 참여하게 되었다. 교육과정은 단순한 주입식의 강의가 아니었다. 12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기본적으로 강사분의 사례위주의 설명이 선행되고 나서, 2명씩 혹은 3-4명씩 짝을 지어 구체적인 사례를 연습해 보는 시간이 주를 이루었다. 내용이 좋은 것 같아 잘 아는 판사님들께 소개를 한 결과, 서울가정법원에서 4월 19일 전 법관을 대상으로 위 센터 대표의 출장 강연 자리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또한 필자가 교육과정을 마친 현재, 종전보다는 가정에서나, 재판진행과정에서 몇가지 개선되는 효과를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육과정의 내용을 재판과정에 응용해 보고, 평소 생각해두었던 내용을 종합하여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이 글은 자기공감 → 타인공감 → 상호간의 공감이라는 3단계로 구성하였다. 여기서 자기공감이 먼저 핵심적으로 서술된 것이 종전과 회기적으로 다른 점이다. ‘당사자의 말을 잘 들어주라’는 부분과 재판장이 고쳐야 할 점 만 강조되다보면, 의무감으로만 다가와서 열정을 갖기 어렵거나, 또는 ‘사건이 많은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는 외적요인 때문에 부담감과 거부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기공감, 즉 재판장의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으로 많이 채워지는 부분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형사단독 재판장을 해본 경험이 없는 관계로, 민사 위주로 서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글은 형사절차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1. 자기 공감
가. 기린과 자칼의 언어
비폭력대화에서는,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 대화하는 평화의 언어 상징으로서 기린을 사용한다. 기린은 육상동물 중 심장이 가장 큰 동물로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람에 대한 연민, 사랑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대화를 한다. 또한 키가 커서 나무가 아닌 숲 전체를 볼 줄 알기에,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상대방의 모습, 학벌, 지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감정과 느낌을 읽어주고, 그 사람을 그 자체로 바라볼 줄 아는 온화한 동물이다.
이에 비하여 자칼은, 가슴 대신 의심하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경쟁하는 머릿속의 생각들에 기초하여 말을 하고, 근본목적과 보편적 요구가 아닌 수단, 방법에 집착하여 상대방에 대한 부탁보다 강요, 명령, 불안, 두려움,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 결과 서로 상처를 줌으로써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칼 스스로도 외로워지고, 자기위주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얼핏보면 사람 중에 자칼의 언어를 구사하는 나쁜 사람이 따로 있고, 기린의 언어를 구사하는 좋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기린의 언어를 할 수 있도록 타고 났다고 한다. 단지 자라면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자칼의 언어에 젖어있는 부모, 선생님, 친구, 동료들로부터 자칼의 언어를 습득하여 그렇게 물들어가는 것 뿐이다. 그래서 꿈많고 천진난만하던 모습에서 점차 ‘세상이 다 그렇지 뭐, 나혼자 기린의 언어를 쓰려고 노력한다고 달라지겠어. 알아나 주겠어?’라고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이처럼 보통의 사람들은 자칼의 언어와 타협하면서 대체로 기린의 언어와 혼용된 형태로 사용하거나,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아예 한쪽의 언어만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자칼의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꼬리표를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이는『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나오듯이 ‘사람과 행동을 분리’하여 생각해보면 명확해진다.
그리고 기린의 언어를 되찾으려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 외롭지 않고 힘들어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조금이라도 상처주었거나, 상처를 받았다고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현재도 가정에서 가족과 특히 아이들과 티격태격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짜안하고 찜찜하다. 한편으로는 그 사람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먼저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이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만나는 사람마다, 항상 보는 가족들과 함께 즐겁고 평화롭게 부담없이 만나고 대화하고, 그들로부터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재판장의 경우 재판때마다 편하게 부드럽게 재판이 진행되고, 재판과정에서 당사자, 변호사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3자간에 함께 사건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까? 선천적으로 온화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이나 가능한 것 아닌가?
한편 기린의 모습을 닮은 재판장이면, 너무 순해서 포악한 맹수들, 나쁜 당사자들을 제압할 수 없지 않은가? 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기린은 단지 상대방의 욕구를 한없이 받아주기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공감과 타인공감을 하다보면, 상대방도 온화한 기린의 모습에 동화되어 함부로 ‘자칼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강도가 약화된다. 그 이유는 재판장이 상대하는 당사자, 변호사들은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포악한 동물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이 부분은 2항 타인공감 부분을 참조바란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남을 수 있는 의문은 ‘어차피 재판은 결론이 명쾌하고 정확해야 하지 않는가?’ 아무리 재판과정에서 온화하게 진행한들, 명쾌하고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방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의미가 반감되는 것 아닌가? 등이다. 필자는 온화한 재판진행과 명쾌한 재판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도를 고민해 보았다. 이 부분은 아직 실험중이다. 3항의 상호간의 공감편을 참조 바란다.
마지막으로 ‘기린의 언어는 어차피 소질이 있어야 하고, 선천적으로 성품이 타고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6주간의 과정을 통해 누구나 의지와 연습량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조금씩 개선되는 내 자신의 모습에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 출발은 자기 안에 숨겨진 보편적 욕구라는 보석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찾아내는 것이다.
나. 보편적 욕구/필요
욕구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고,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욕구 차원에서는 모든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욕구의 종류에는 자기공감편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욕구목록과 같은 것이 있다. 대부분은 능동태와 수동태 모두 가능하다. 예를들어 ‘도움’같은 욕구는, 도움을 받고 싶은 욕구도 있고, 도움을 주고싶은 욕구도 있다.
이 욕구목록을 하나하나 찬찬히 느끼면서 읽어보면 ‘참 아름답다, 마음이 편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현재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욕구 단어가 있을 것이다. 그 욕구 단어는 자기에게 현재 상황에서 특히 더 필요해서 충족받고 싶거나 충족되고 있는 중요한 욕구라는 의미가 된다.
1) 느낌과의 관계
느낌목록 역시 자기공감편의 마지막에 있다. 느낌목록의 왼쪽에 있는 것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이고, 오른쪽은 충족되지 못했을 때이다.
이러한 느낌은 ‘버림받았어, 나를 무시했어’라는 식의 생각과 구별하여야 한다. 위와같은 느낌은 내,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몸이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인데 비하여, 이와 같은 생각은 머릿속으로 분석, 비교, 의심, 비판하면서 과장된다. 느낌 자체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되면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발생한 느낌의 원인을 상대방이 제공했다고 여기면서 상대방을 비난하게 된다. 기린이 아닌 자칼의 언어가 된다.
2) 욕구와 수단, 방법의 구별
욕구는 사람이면 누구나 필요로 하는 보편적인 것이므로,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수단, 방법과 구별된다. 예를 들어 밥을 잘 안먹는 아이에게, 부모가 억지로 밥을 먹이려고 할 때, 그 근본적인 욕구는 ‘아이가 밥 잘먹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아이의 삶과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다. 즉 전자는 모든 부모가 택하지 않으므로 수단에 불과하고, 후자가 욕구인 것이다. 따라서 욕구인 아이의 건강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밥 먹이기’라는4) 수단에 집착하지 않고 ‘잠을 일찍 재우는’ 등의 다른 수단을 택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기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 ‘아이를 키운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왠지 키우는 사람에게는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 부분이 강조되고, 또한 키우는 사람의 의사에 따라 아이는 피동적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상대방인 아이의 거절하고 싶은 입장을 반영하려면, ‘기여’라는 표현이 부모의 진정한 욕구를 더 잘 표현하여 준다고 한다.
이처럼 수단,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음에도, 보통은 욕구에 치중하지 않고 자신이 택한 수단, 방법이 최선인 것처럼 상대방에게 권유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예를 들어 건강이라는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에는, 운동도 있겠지만, 영화, 공연관람, 여행 등의 다양한 수단, 방법이 있다. 또한 운동 자체만 해도 맨손체조 등 많은 종류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자기가 어떤 운동을 했더니 좋더라면서 이를 계속해서 이야기한다면, 그 운동을 했다가 무리를 해서 별로 효과를 못봤다거나 주위에서 부정적인 말을 들었던 상대방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은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고, 대화 중 어색한 상황을 낳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부부싸움은 필수인가? 선택인가?
한편 『화성남자, 금성여자』에서는 남편들이 대체로 아내의 이러저러한 말에 대하여 해결해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를 욕구의 측면에서 보면 남편은 아내에게 도움을 주고 싶고, 기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움과 기여’에 치중하여 보면, ‘해결해주려는’ 수단, 방법 대신에, ‘경청과 공감’ 등 다른 수단,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아내 역시 ‘남편이 알아서 잘 해주기를’ 바라는 편인데, 그 근본적인 욕구는 ‘배려, 지지, 사랑, 확인받는게 필요한’ 것일터이므로, ‘남편에게 툴툴거리거나, 비교하는’ 등의 수단, 방법 대신에 다른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면서, 마치 부부싸움이 필연적인 것이고, 싸우고 나면 자연스레 없었던 일이 되는 것처럼 표현하지만, 이러한 기린의 대화를 한다면, 부부싸움은 선택에 불과한 것이고, 칼을 꺼낼 필요도 없게 되지 않을까?
4) 욕구와 에너지, 의욕
욕구는 모든 사람에 삶의 활력을 제공하는 에너지이다. 욕구 자체의 아름다움에 치중하여 의식하다보면, 위 욕구가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방법으로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즉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 느껴지는지, 몸의 반응이 어떻게 오는지를 의식해 보면 어떤 에너지가 솟구치게 된다5).
이러한 몸의 에너지는 의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 순간 상대에 대한 비난을 하거나 짜증, 화를 표출하는 대신, 그러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어떠한 수단,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창의적으로 상상해 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너그러움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위 욕구라는 것은 평소에 자기성찰할 때 수시로 하는 것이고,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그때그때 머릿속으로 떠올려서 하는 것이 아니다.
5) 가능하다는 상상의 즐거움
이때 이러한 욕구가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만 치중하여야 하고, ‘잘 안될 것 같은데’라는 의구심, 잘 안될 수 밖에 없는 방해 요인들은 최대한 지워버려야 효과적이다. 특히 ‘나는 --해서 안돼’라는 식의 콤플렉스와 ‘내가 재판장의 자격이 있는걸까?’라는 식의 자책은 위와같은 욕구찾기에 가장 큰 방해요소이다. 또한 ‘상대방이 --하기 때문에’, ‘주변 여건이 안받쳐주기 때문에’라는 생각도 지워버려야 한다. 상대방이나 주변여건은 모두 나의 통제영역 밖에 있어서 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필자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6주간의 교육 중 4주째에 이러한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 강사로부터 욕구카드6) 중에 현재 가장 필요한 욕구 단어를 선택하여서, 그것이 충족되었을때를 떠올리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해보라’는 주문을 받았고, 약 3-4분간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당시 혓바늘이 돋는 등 피곤한 상태여서 휴식이라는 욕구가 필요했는데, 문제는 당시 교육중이고 집에 11시 넘어서야 늦게 도착하는데다, 다음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 등 객관적으로 충분한 휴식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필자의 평소 체질상 일단 혓바늘이 돋으면 휴식을 취하더라도 2-3일간은 피곤한 상태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추가되었다. 명상을 시작한 초반에는 ‘나는 원래 체력이 약한 편이어서 잘 안될건데’라는 변명까지 더해져서 명상을 방해했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이러한 생각들을 집어던지고, 혓바늘이 낳았을 때, 피로가 풀렸을 때의 활기찼던 내 모습, 기분이 상쾌했던 때, 머리가 맑아져서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처럼 자신감이 넘치된 때(과거에 그런적이 종종 있었으므로)를 의식적으로 떠올렸다. 그랬더니 명상의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기분이 좋아지면서 현재 객관적으로 피곤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지면서, 머릿속이 뻥 뚤린 느낌으로 충만하게 되는게 아닌가?
물론, 욕구에 충분히 머무르기의 연습과 명상은, 사람마다 다 방법이 다르고, 느끼는 과정과 경로가 다르다고 한다. 위에서 든 사례는 단지 필자가 교육과정에서 체험한 한가지를 소개한 것에 불과하다.
다. 관찰과 평가
비폭력대화의 첫 번째 요소이다. 관찰은 우리가 처한 어떤 상황에서, 우리의 느낌을 자극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그 사람은 이기적이야’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면, 그것에는 구체적인 사실이 생략된채 그 사람의 어떤 행동에 대한 평가, 판단, 선입견, 분석, 추측, 의견 등이 개입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를 정확히 관찰로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은 우리가 매주 하기로 약속한 동네 청소에 한달 동안 나오지 않았어’ 정도가 될 것이다. 두가지는 비슷해보이지만, 관찰로 이야기했을때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잘못을 들춰내려는 의도가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나름대로 다른 사정이 있을 수 있음를 열어두고 있고, ‘왜 안나왔을까?’ 더 이유를 알아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평가로 이야기하게 되면, 이미 꼬리표가 붙어버려 다른 측면을 볼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 사람을 나중에 만나게 될 때 ‘사람 그 자체로’ 만나는데 방해가 된다.
관찰은 한마디로 사실관계를 나열하는 것인데, 필자는 이 첫 번째 요소가 제일 어려웠다. 그 이유는 평소에 비디오카메라에 찍힌 그 상황을 그대로 말하듯이 그대로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나의 평가와 판단이 들어간 상태를 이야기하는 버릇이 습관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일을 떠올려 관찰로 말을 하려고 해도,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위에서 본 느낌과 욕구에 치중하여 에너지를 얻기기 위하여는, 평가를 배제한 관찰로 이야기하고, 기억해내는 연습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재판에서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정해야 그에 따른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재판장은 정작 재판을 진행하면서 드러나는 당사자나 변호사의 말과 행동에 대하여는 사실관계 그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 당사자나 변호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한두번씩 느끼게 되었을 때, 구체적인 관찰을 하기보다 '억지부린다‘ ’법조인의 자질이 부족하다‘라는 식으로 평가부터 내리기 때문이다.
라. 나는 왜 특정한 행동을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행동 뒤에 숨어있는 동기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매일매일을 반복되듯이 살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의욕보다, 그냥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살아가지는 않는가? 그래서 보통은 외적인 혹은 물질적인 보상으로 동기를 유발해보려 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도 역시 ‘밥먹이기, 씻기기, 학교가서 공부하기’ 등과 관련하여 의무감을 강조하거나, 외적인 보상으로 동기를 유발해 보려 한다. 직장에서도 상사들은 하급자들이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들려고 할때도 이런 수단,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아래처럼 선택과 내적 동기유발에 치중하게 되면, 하루하루가 새로워진다. 하루하루가 즐거워질 것이다.
1) 의무에서 선택으로
의무감에서 벗어나려면, 선택으로 바꾸는게 좋다고 한다. ‘나는 --해야한다’ → ‘나는 --하기로 선택했다. 왜냐하면 ---욕구가 충족되고자 하기 때문에’로 바꾸어 보면 어떤가? 가급적이면 내가 하기 싫은 것보다는, 하고싶은 것을, 즐겁지 않은 것보다는 즐거운 것을 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즐겁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어떤 욕구를 충족받고자 하는가?를 별지 욕구목록표를 보면서 명상해보면, 의외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좋은 수단, 방법이 떠오르거나, 주변에 알아보려고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2) 외적 보상에서 내적 동기유발로
흔히 돈이나, 선물 등 물질적인 보상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이나 인정, 칭찬을 받는 등의 정신적인 보상을 통해 동기를 유발해 보려고 한다. 이 두가지는 모두 외적인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지만, 전자는 수단에 불과하고, 후자는 욕구의 측면도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사람은 대체로 기왕이면 후자의 보상에 더 동기가 유발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 ‘좋은 부모’ ‘원만한 판사’ ‘일 잘하는 직원’ 등의 평가를 받기 위해 행동하는 경향이 있지는 않는가? 이런 평가를 받지 못하는 행동을 할 때 쏟아질거라고 생각되는 꼬리표 ‘특이한 사람’ ‘튀는 판사’ 등등을 의식하면서 살기도 한다. 이는 우리 대부분이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학교에서 외적인 보상으로 동기를 부여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인생이란 당연히 외적인 보상을 받기 위해 사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단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싶은 마음에서 행동할 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호감을 가져주지 않을까? 이는 항상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남의 시선’ 대신에 ‘내가 어떤 욕구를 충족받고 싶은가?’를 생각하며 내적인 동기유발을 할 때만이 가능하다.
마. 재판과정에 적용
1) 재판장과 당사자간 공통의 욕구
필자는 비폭력대화 교육과정을 마치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정리해 보았다. 재판장과 당사자간에는 욕구가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상호 통하는 것이 있고,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욕구는 모든 사람이 갖는 보편적인 것이고, 욕구 차원에서 사람들간에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판의 첫기일부터, 과정, 결론, 종국된 이후라는 순서대로 정리하자면,
① 자기 주장을 제대로 표현하고, 상대방이 잘 들어주고 믿어주었으면 하는 욕구(자기표현, 존중, 공감, 신뢰) ② 궁금한 사항에 대한 질문, 답변을 통하여, 쟁점이 드러나고 소송관계가 분명해졌으면 하는 욕구(명료함, 발견, 보람, 소통, 진실) ③ 재판 과정의 공정성으로, 평화롭고, 원만하게, 공정하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욕구(편안, 부드러움, 상호성) ④ 재판 결론의 정확성으로서, 반드시 이겨야 할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재판의 결론이 내려졌으면 하는 욕구(정직, 성실, 진실, 예측가능성), ⑤ 분쟁이 종국적으로 해결됨으로써, 자신의 상황과 쌍방 당사자간의 관계 등이 소송 이전으로 정상화되었으면 하는 욕구(홀가분함, 안도, 위안, 공동체, 회복, 돌봄, 자기보호) 등등...
그런데 과정 및 결론부분과 관련하여, 패소할 당사자로서가 거짓말을 하는 등으로 이기려는 데에 집착한다고 생각이 들 경우에도 과연 위와같은 욕구를 갖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소송사기죄가 성립되는 경우가 아닌한, 패소할 당사자라는게 미래에 종국단계(결론이 난 상태라도 상급심에서 결론이 바뀔 수 있음)에서나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추정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재판장과 당사자간의 위치, 입장이 다르고, 사람마다 충족받고 싶은 욕구가 상황마다 다르므로, 조금씩 중요도는 다를 것이다.
2) 재판장이 더 필요로 하는 욕구
①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해감으로써 법률전문가로서의 실력을 쌓아가는 것(전문성, 숙달), 재판의 권위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존중), 소위 깡치사건처럼 어렵고 복잡한 사건, 특수당사자사건8) 등 진행이 힘든 사건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욕구(홀가분함, 자유), 피해자, 채권자를 도와주어 그들의 삶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도움, 기여9))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욕구 역시 욕구목록에 있는 것으로서 특정 재판장에게 특정 상황에서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위와같은 욕구에 치중하다보면, 당사자와 연결될 수 있는 위 5가지 욕구를 소홀히 하기 쉽다는 점이다. 그리되면 당사자로서도 자신들의 특유의 욕구를 강조하면서, 재판과정에서 재판장과 대립각을 세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순간이 오게 되더라도 늦지않게 재판장이 위 5가지 연결욕구로 돌아간다면, 온화하면서도 명쾌한 재판진행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장이 이러한 대립각의 상황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즉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당사자의 말을 중단시키거나, 피고, 피고인에 대한 훈계, 비난10), 소란행위 당사자에 대한 퇴정명령이나 감치 등 ‘권위에 기댄 제재’를 택하게 되면 비극적인 상황으로 악화된다. 문제는 그렇게 했을 때 과연 재판장이 행복해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단을 택했을 때, 마음이 편해지는 재판장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수단을 통해 재판의 권위 등이 진정으로 세워질지도 의문이다. 당사자들의 억눌리고 꺽여버린 욕구는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사람들을 제재하지 않으면 정직하고 진실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어렵고, 사법정의도 무너지는 것 아니냐’ 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제기한 관점은, 제재라는 것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다른 수단, 방법을 동원해 보고, 제재는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두자는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이런 상황으로까지 발생하지 않도록 당사자의 욕구에도 관심을 갖고, 예방을 하자는 차원이다. 후술하는 2항의 타인공감을 참조바람.
3) 한가지 수단, 방법에 집착하지 않기
따라서 이 재판장의 특유한 욕구들의 근원에는 오히려 위와 같은 5가지 욕구가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5가지에 치중해보면, ‘권위에 기댄 제재’를 제외한 다른 여러 가지 수단을 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또한 사건을 잘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특정한 해결방법, 조정안의 제시나, 증거신청의 채부결정, 기일의 속행여부 등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참고로 필자가 2006년경에 제시한 ‘본인소송에서의 법정커뮤니케이션’의 3항 부분 역시 그러한 수단, 방법을 나열한 것이다. 수단, 방법은 재판장마다 각자의 스타일이나 상황에 맞게 창의적으로 구사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나열된 수단, 방법에 집착하거나 기계적으로 적용하려하기 보다, 욕구에 치중하는 것이 좋다.
특히 강압적인 조정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뒤 3항의 상호간의 공감 참조
4) 세가지의 반응형태
재판과정에서 당사자나 변호사의 부적절해 보이는 어떠한 행위나 말로 인하여, 혹은 사건이 뭔가 해결의 실마리가 안잡힐 때에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되는 어떤 당사자가 있을 때, 우리는 세가지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① 버릇없다 사건에서처럼 짜증이나 화를 표출해버리는 것, ② 그냥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덤덤하고 무감각하게 넘어가는 것. 하지만, 상대가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③ 그쪽 나름대로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있었기에 비극적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무엇인지와 느낌에 귀기울이면서 연민으로 반응하는 것.
이 중 ①을 정서적 의존상태 ②를 무심한 상태11) ③를 감정적 해방상태라고 한다. ①은 상대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이러한 감정을 화를 내는 형태로 표출할 때,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거나, 해결해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를 돌보지 않고 상대의 감정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다보니, 사람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특히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는, 자식이 원수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②는 자신의 욕구만 생각하기에 상대방의 느낌이나 욕구에 둔감하여, 이를 배려해야할 필요성이나 방법을 모르는 상태이다.
우선적으로 ①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내가 짜증이나 화가 나는 것은 ‘나의 어떤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고, 상대방은 단지 ‘자극, 일종의 계기’를 제공한 것 뿐이라고 생각을 바꾸는게 필요하다. 상대방이 원인이라고 여기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비난하고, 지적, 충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은 방어심리에 따라 반발, 불만을 쌓게 된다. 한편 짜증이나 화를 낸 재판장 역시 찜찜한 마음을 피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나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것에 원인을 둔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 내면의 성찰’이고, 문제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는 셈이다. 다만 나를 자책하는 괴로운 과정이 아니라 나의 부족한 욕구를 채우는 긍정적이고, 행복해지는 과정이다. ①이 아닌 ③을 선택하게 되면, 짜증이나 화라는 것이, 일단 발생한 것을 표출하지 않고 참아야 할(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왜 발생하는지 들여다 봄으로써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②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후술하는 2항의 타인공감편을 참조바람.
라. 내 안의 기쁨이 흘러넘칠 때
6주간의 과정 중 5주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를 떠올려, 그때의 느낌과 욕구 찾기, 욕구에 충분히 머무르기 등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5주동안의 연습을 통해 내 안에 욕구가 제법 채워진 것 같았고, 그로인해 가정에서, 재판에서도 나의 모습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던 상황이었다. 적어도 화나 짜증이 별로 나지 않았고, 피곤한 상황에서도 피곤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는 점차 좋은 것들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었다.
마지막날에는 고마운 느낌이 들었을때를 상정하였는데, 이는 욕구가 ‘충족되었던’ 상황으로서 앞의 5주와 다른 양상이다. 우리는 보통 살아가면서 그냥 고맙기는 했다 정도로 그치고 그 안의 욕구찾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 안의 어떤 욕구가 채워졌음에도’ 이를 의식하지 못하기에 왜 고마운지도 잘 못느끼고, 그로인해 굳이 고맙다는 표현도 않게 되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 역시 ‘말하는 사람의 이러한 채워졌던 욕구에 관하여’ 듣지 못한 채 막연히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뭘 그런걸 갖고’라고 하거나 쑥쓰러워하게 된다.
우선 간단한 사례를 떠올려, 2명씩 짝지어 감사한 느낌을 받았을 때의 묻혀있던 욕구찾기 연습을 하였다. 필자는 가정에서 아이들과 아내에게 감사했던 순간을 떠올려서 연습을 하였다. 그 후 감사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버지에 대한 추억 중 잊혀지지 않았던 순간이었고, 왠지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는게 맞았던 것 같은데,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했던 상황을 편지로 썼다.
이 감사의 편지를 쓰는 방식은, 그 사람이 한 행동이나 말(관찰) → 그로 인해 나의 어떤 욕구가 채워졌던가? (욕구) → 그것을 생각할 때, 지금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 (예를 들어 가슴이 뭉클하고, 든든하고, 감사하고, 힘이 솟는다는 등의 느낌)의 순서였다. 그냥 막연히 감사의 편지를 쓰라고 했다면, 다분히 추상적이고 입에 발린 표현만 사용하게 되었을터인데, 위와같은 방식이 제시되어 있어, 편지를 쓰는데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편지를 낭독할때까지는 좀 쑥쓰러웠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아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피드백해 주는 역할을 분이 필자에게 ‘그랬구나, 네가 그때 가방을 못찾아 안절부절해 하는것 같았고, 단지 그게 안쓰러워서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다행히 가방을 찾고서 너무 좋아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흐뭇했단다’ 라는 식으로 피드백을 해주는게 아닌가? 그 말을 들으니 긴장되고 쑥스러웠던 감정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대신 가슴벅차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의 당시 심정이 전달되니12) 아버지가 더 가깝게 느껴진 것이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편지를 낭독하고, 피드백해주는 것을 유심히 지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들의 흐뭇하고 즐거운 표정이 눈에 들어왔고, 6주간의 과정을 함께 했던 10여명의 사람들이 다들 이뻐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편지낭독이 모두 끝난 다음에, 강사로부터 편지 들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말해보라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모두들 이뻐보인다’라고 대답하였다. 세상에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오다니 !!!
강사는 6주간의 과정을 마치며, 향후에도 1주일에 한번씩 비폭력대화센터에서 하는 ‘연습모임’에 참여하여 관찰, 느낌, 욕구를 들여다보는 성찰과 연습을 꾸준히 하면 누구나, 기린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6주간 한 역할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수천 개의 보석을 조금씩 파내는 광부’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보석이 묻혀있다는 것이다. 충족되었거나 아니면 충족되지 못한, 욕구의 형태로...
신기한 사실은, 필자가 마지막날 감사의 표현과정을 마친 후, 내 안의 기쁨이 두배로 흘러넘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흘러넘쳐 타인에도 눈이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틀 후 재판진행할 때에도, 단지 짜증이나 화가 안나는 정도가 아니라, 당사자, 변호사의 눈을 맞추며 타인공감을 통해 매끄럽게 대화하는 것이 조금씩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모든 사건에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사건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거나, 화해가 성립되는 등의 성과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도, 재판이 힘들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처음인듯 싶다. 아마도 적어도 그 사건들에서는, 사건을 해결해야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그들의 말과 표정, 눈길 하나하나에 주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이와같은 체험이 일회성으로 그칠지 지속되어 갈지, 필자로서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계속 기린의 대화를 연습해보고, 명상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의욕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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