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 우리 주교 님으로부터 한마디쯤 얻어들을 얘기지만
난 가끔 고백성사 주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할 때가 있다.
누가 성사 좀 달라고 하면 못 들은 척하기도 하며 성당에 들어갈 때는
일부러 고백실에서 먼 자리에 앉기도 한다.
그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하느님 앞에 종종 죄를 짓고 있다.
"성사 달라는데 왜 못 들은 척하셔요?"
가끔 자매님들의 성화에 덜미가 잡힌 나는 할 수 없이 고백실에 끌려가
성사를 주지만 그냥 나오고 싶은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주일 ×번 빠졌습니다. 성찰한 죄는 그뿐입니다."
벌써 몇 번이나 들어 왔던 내용이던가?
바빠서 빠질 때는 기도로 대신하라 해도 여전히 제멋 대로며,
그리고 한 달 내내 지은 죄가 어찌 또 그뿐이겠는가?
처음부터 배운 것이 그런 식이니 좀처럼 고쳐지질 않아
성사를 주는 나로서는 남는 것은 짜증이요 피곤이다.
"오늘 성사보고 다음 주에 또 빠질 건가요?".
물어 보나마나한 소리를 슬그머니 던져본다.
"먹구 살라문 또 빠져야지라우!"
괜한 말을 해 가지고 신부는 또 흥분을 한다.
"안 빠지겠다는 결심으로 성사를 봐야지,
또 빠지겠다는 심보로 성사를 봐요?"
성사를 주노라면 죄를 벗는 것은 신자 쪽이고, 죄를 보태는 것은 신부 쪽이다.
그래도 그 자매님은 죄라고 고백했으니 다행이라면 또 다행이다.
어떤 할머니가 숨 넘어가는 소리로 성사를 달라기에 또 무슨 난리가 났었는가
싶어 헐레벌떡 고백실에 들어가 앉았더니 죄는 고백하지 않고 기도문만 길게
낭송하는 것이었다.
"아니, 죄를 고백하셔야지요?"
뭘 혼동하고 계시는가 싶어 그 동안 죄 지은 것을 차근차근 고백하라 했더니
이 할머니,
"뭔 죄가 있을랍디여!" 하시더니 성사본지 오래돼서 그냥 들어왔으니 신부님이
알아서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 일이 이쯤 되면 문제가 도 복잡해진다.
요것조것 들춰 가며 죄 없다는 할머니에게 죄를 얹어 주어야 하니
서로가 불편하고 괴로운 일이다.
마치 형사가 범인을 잡아 놓고 죄를 추궁하는 식이다.
그러면 또 걸려들지 않는 죄목이 없다.
기도는 안한 날이 더 많았고 아들, 며느리 미운 마음으로 집에서 욕바가지
깨나 긁어댔으며 이웃 사람들과 싸움하고, 욕질하고, 하루도 성하게 계신 날이
없는 분이시다. 게다가 장에 가느라고 주일까지 서너 번 빠지셨단다.
"죄는 혼자 몽땅 지어놓고 죄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속았다는 기분으로 소리를 버럭 지르면 할머니는 또
"늙은 것이 뭐 알랍뎌!" 하시면서 깔깔깔 웃으신다.
그것이 어디 할머니들뿐이겠는가?
명색이 신부인 나 자신은 얼마나 똘똘하게 성사보고 뉘우치고 참회하며
하느님 앞에 나갔던가!
솔직히 반성해 보면 우리 할머니들보다 더 나을 바 없는 것이 본당 신부의 주제다.
그러면서도 뭐 잘났다고 성사 때마다 신자들에게 소리소리 지르는지
부끄럽고 한심스러울 뿐이다. 주여, 부활절이 가까이 와있나이다.
부디 두 손 모아 빌건대 올해는 그놈의 소리 좀 안 지르게 해주시옵소서.
혼자만 죄 없는 척하지 말고,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어야 할 인생임을
깨닫게 해주시어 오시는 주님을 경건한 마음으로 영접하게 하옵소서.
강 길 웅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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