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무얼 선물할까. '성서'를 선물하는 부모는 흔치 않을게다. 서울 화곡본동본당 홍덕영(미카엘, 43) 이은숙(아가다, 38)씨 부부는 성서를 꼭 선물한다.
올 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셋째 성준(대건안드레아)에게도 첫째 성민(프란치스코, 중1), 둘째 성아(마리마르타, 초등5)처럼 성서를 통해 힘과 지혜를 얻으며 자라도록 하는 마음을 담은 글과 함께 성서를 선물했다.
넷째 성연(에스델, 6), 다섯째 성경(글라라, 4살)이는 물론 이달 20일께 태어나는 여섯째에게도 어김없이 성서 선물은 이어질게다. 성아는 초등학교 3학년 첫영성체 무렵 신구약을 모두 읽었다. 이해가 안가는 부분을 엄마, 아빠에게 질문하던 성아는 다 읽은 후 묵시록이 가장 좋다는 표현도 했다.
엄마는 태교도 성서로 했다. 임신하면서 창세기를 읽기 시작해 출산할 때면 묵시록을 마친다. 평소에도 매일 미사 참여와 성체조배는 엄마에게 기본이다. 저녁 시간에도 9시 뉴스 외에는 TV 앞에 앉는 대신 성서를 읽고 묵상하거나 기도를 한다. '기도하는 엄마' '성서 읽는 엄마'를 따라 아이들도 기도와 책을 가까이 하는 게 자연스럽다.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부가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학원에 보내지 않는데도 이런 분위기 영향인지 홍씨 가정 아이들은 신나게 놀면서도 자기 일을 알아서 잘 한다. 성당에서 복사를 서는 첫째의 영어, 수학 학원비를 본당신부가 대주겠다고 하는데도 부부는 굳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사양했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이 신앙이라는 홍씨 가정에서 아이들이 꼭 지켜야 하는 일은 주일미사와 주일학교, 주일 '가정기도' 참여다.
가정기도는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시작했다. 공항동본당 시절 반장으로 활동하던 엄마 이씨가 소공동체모임을 가정에서부터 실시해보자고 제안한 것이 지금까지 매주일 오후 5시에 계속되고 있다. 아이들은 바깥에서 놀다가도 가정기도 시간 전에 꼭 들어온다.
복음묵상나누기 7단계로 진행되는 가정기도 시간은 가족 대화 자리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지루해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곧잘 한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는 홍씨 부부는 자녀들에게 생명 교육을 겸한 성교육까지 자연스럽게 실시한다.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느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생명 관련 비디오테이프를 같이 보면서 설명해준다. "엄마ㆍ아빠 '아기씨'가 만나 너희가 태어났어…요즘은 한두명만 낳다 보니 우리 집과 달리 셋째, 넷째가 없지. 너희들은 하느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야."
아이들을 유독 좋아하는 부부는 생명의 주인이 하느님이라는 믿음으로 인공피임 뿐 아니라 출산조절도 구태여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하느님, 찬미받으소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는 부부다. 하지만 "가진 것 없이 무책임하게 애만 많이 낳는다"는 친척들 손가락질에 힘들어 하기도 했다.
홍씨 가정은 현재 상가건물 4층에 4000만원 전세로 산다. 컴퓨터학원을 운영할 때는 살림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IMF' 시절 컴퓨터를 몽땅 도둑맞았다. 재기하려다가 또 실패, 3년 전 공항동에서 이곳으로 이사와 문방구를 막 시작하려던 찰나 또다시 불행이 덮쳤다. 홍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한쪽을 절단하고 8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그때가 참 행복했던 시기였어요. 정말 많은 기도를 받고 이웃 사랑도 느꼈어요."
홍씨는 언제 그런 고통이 있었느냐는 듯한 표정이다. 본당에서 필요하면 밤낮없이 달려가 봉사하던 홍씨가 사고가 났을 때 공항동본당 신자들은 구역별 기도는 물론 2차 헌금까지 모아왔고 본당 어린이집은 홍씨 어린 자녀들을 무료로 돌봐주고 등하교까지 맡아줬다.
홍씨는 현재 한 수도회 후원회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다. 월급이라야 얼마 되지 않지만 부인 이씨에겐 너무 귀하고 소중한 돈이다.
"남편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영안실에서 만날 줄 알았거든요. 그때는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갔었는데, 신앙이 어려움에 처한 우리 가정을 더 단단히 묶어 주었어요."
이씨는 아이들과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하느님 앞에서 울며 기도하곤 했다며 그 속에서 '성체조배' 은혜를 받아 지금도 성체 앞에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성서 읽기와 기도가 몸에 밴 이씨는 언젠가 기도 중에 둘째가 "좋은 아파트에 살다 작은 집에서 살고, 아빠는 다리 아프고… 하느님이 밉다"고 하는 말에 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과 관련해 설명하며 아이를 이해시켰다.
이씨 집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인데도 본당 우리농 매장에서 무농약, 유기농 농산물을 사 먹는다. 병원비를 생각하면 좋은 먹을거리를 사 먹는 게 훨씬 싸다는 결론이다. 그래서인지 가족이 다 건강해 병원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엄마는 단순히 가족 건강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감자 캐기 등 농촌 체험에도 같이 참여하면서 생명, 환경교육도 자연스럽게 한다.
아빠는 몸으로 직접 생명 나눔에 동참하고 있다. 이미 사후 시신 기증을 했고, 81년부터 시작한 헌혈(성분헌혈)은 교통사고 때 1년여를 제외하고 계속되고 있다. 헌혈 횟수는 지금까지 220회.
아빠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대신 문방구를 맡아주던 아이들 할아버지는 지금도 낮 시간에는 문방구를 봐주러 온다. 아침시간에는 엄마가 잠시,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는 퇴근한 아빠가 문방구 일을 본다.
"맞벌이 부부들이 밤늦게까지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찾아와요."
수입 일부를 살림에 보태지만 굳이 늦게까지 문을 열어놓는 것은 이런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배려가 크다.
이연숙 기자 mirinae@pbc.co.kr
(사진설명) 홍덕영씨 가족이 집 부근 놀이터에서 잠시 포즈를 취했다. 첫째와 둘째는 자기들 '일'에 차질이 생겼다며 뚱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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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영 미카엘 형제님은..제가 잘아는 분이고 저랑 같이 모임도 같이 했던 분 입니다. 이분을 생각하면 지금은 다리가 불편하셔서 못하시지만 예전에는 헌혈대장이었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전혈 헌혈로 100회가 넘는 걸로 기억합니다. 마침 이분이 2004년 9월 14일자 평화신문에 나왔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