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메세지/구약성경

새번역성서 창세기 - 5장

김대철대철베드로 2004. 8. 30. 18:02
아담의 자손

5 1)     아담의 족보는2) 이러하다. 하느님께서 사람을3) 창조하시던 날, 하느님과 비슷하게 그를 만드셨다.4) ○ 그분께서는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5) 하셨다.
    아담은 백삼십 세 되었을 때, 자기와 비슷하게 제 모습으로6)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 셋을 낳은 다음, 아담은 팔백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 아담은 모두 구백삼십년을 살고 죽었다.7)
    셋은 백오 세 되었을 때, 에노스를 낳았다. ○ 에노스를 낳은 다음, 셋은 팔백칠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 셋은 모두 구백십이년을 살고 죽었다.
    에노스는 구십 세 되었을 때, 케난을8) 낳았다. ○ 케난을 낳은 다음, 에노스는 팔백십오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 에노스는 모두 구백오년을 살고 죽었다.
케난은 칠십 세 되었을 때, 마할랄렐을 낳았다. ○ 마할랄렐을 낳은 다음, 케난은 팔백사십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 케난은 모두 구백십년을 살고 죽었다.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 되었을 때, 야렛을 낳았다. ○ 야렛을 낳은 다음, 마할랄렐은 팔백삼십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 마할랄렐은 모두 팔백구십오년을 살고 죽었다.
야렛은 백육십이 세 되었을 때, 에녹을 낳았다. ○ 에녹을 낳은 다음, 야렛은 팔백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 야렛은 모두 구백육십이년을 살고 죽었다.
    에녹은 육십오 세 되었을 때, 므두셀라를 낳았다. ○ 므두셀라를 낳은 다음, 에녹은 삼백년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면서9) 아들딸들을 낳았다. ○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년을 살았다.10) ○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11)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 되었을 때, 라멕을 낳았다. ○ 라멕을 낳은 다음, 므두셀라는 칠백팔십이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 므두셀라는 모두 구백육십구년을 살고 죽었다.
    라멕은 백팔십이 세 되었을 때, 아들을 낳고, ○ “이 아이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12) 수고하고 고생하는13) 우리를 위로해 주리라.” 하면서, 그의 이름을 노아라 하였다.14) ○ 노아를 낳은 다음, 라멕은 오백구십오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 라멕은 모두 칠백칠십칠년을 살고 죽었다.
    노아의 나이 오백 세 되었을 때,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1. 5장은 2,4ㄱ에 이어지는 사제계 전승에 속한다. 여기에 나오는 선조들의 나이를 사마리아 오경과 칠십인역은 달리 제시한다. 대부분의 이름은 창세 4장의 야훼계 족보에 나오는 것들이다.
2. 족보는 사제계 전승에서 큰 구실을 한다. 이는 그 이전,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태어난 반유목민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3. “아담을”로 옮길 수도 있다.
4. 1,26과 각주 참조.
5. 히브리말로는 “아담”이다.
6. 1,26과 BHS 참조.
7. 노아의 홍수 이전의 열 선조들에 대한 이 명단은 메소포타미아 전통에 대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전통은 메소포타미아의 임금들이 평균 삼천년을 살았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이 계보가 말하는 선조들의 수명은 가장 긴 것이 천년을 넘지 않는다. 이 선조들의 수명은 점진적으로 줄어들지만, 어떤 규칙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8. “케난”은 여기에만 나오는 이름으로서, 통상 “카인”이라는 이름의 다른 형태로 여겨진다.
9. 직역: “`……`거닐면서.” 이는 인생길을 걷는 것, 곧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24절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느님과 함께 거닐다.’라는 이 표현을 후기 유다교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다.’로 해석한다.
10. 이 에녹의 수명은 태양력의 날수와 같다.
11. 엘리야 역시 하느님께서 데려가신다(2열왕 2,9). 에녹의 이 이야기는 후에 유다교 묵시록의 한 주제가 된다.
12. 이 절은 땅의 저주를 상기시킨다(3,17). 이 저주는 하느님께서 홍수 뒤에 노아가 바친 희생제사를 기꺼이 받아들이심으로써 폐기된다(8,21).
13. 직역: “`……`때문에 (겪어야 하는) 우리의 노고와 우리 손의 고생에서.”
14. “노아”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위로하다’라는(이사 40,1 참조) 동사와 관련된다. 이로써 하느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실 것임이 시사된다(창세 6,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