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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기쁨의 만남, 기쁨의 노래

김대철대철베드로 2004. 8. 12. 12:30
[생활 속의 복음] 기쁨의 만남, 기쁨의 노래
785 호
발행일 : 2004-08-15

 언젠가 한 여학생을 수녀님들이 운영하고 있는 '미혼모의 집'에 데려다 준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한순간 실수로 덜컥 아이를 가졌지만 선생님 충고에 따라 미혼모의 집에 가서 아이를 낳겠다던 아이가 참으로 기특해 보였습니다.

 저를 더욱 감동시킨 것은 미혼모의 집에서 일하시는 수녀님들 모습이었습니다. 미혼모의 집 대문에 붙어 있는 초인종을 누르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잔뜩 주눅이 들어 긴장해있었는데, 대문에서 아이를 맞이하신 수녀님은 그런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꿔놓으셨습니다. 마치 친정어머니가 딸을 맞이하는 듯한 얼굴, 따뜻한 목소리로 "그래, 잘 왔다. 힘들겠지만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지내거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굳이 수녀님의 그런 자상함이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아이들 표정이나 자연스런 분위기를 통해서 아이들이 참으로 환대받고 존중받으며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집이다' 생각하라던 말씀이 그저 인사치레로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과 엘리사벳이 상봉하는 복음 장면을 묵상하면서 한 가냘픈 여학생을 따뜻이 맞이하시던 미혼모의 집 수녀님이 떠올랐습니다.

 유다 문화에서 미혼모가 되었다는 말은 어떻게 손써 볼 도리가 없는 절박한 처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마치 징그러운 벌레라도 보는 듯한 사람들 시선, 철저한 소외와 지독한 낙인, 극도의 긴장과 부담, 스트레스 등이 가녀린 한 산골소녀 마리아가 견뎌내야 할 몫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도 큰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지칠 대로 지친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초췌해진 몰골로 힘없이 들어서는 마리아가 참으로 가엾어 보였지만 이미 영적 삶에 들어섰던 엘리사벳이었기에 영적 눈으로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마리아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 성령을 발견한 엘리사벳은 큰 소리로 마리아의 잉태가 절대로 부정한 행실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인한 것임을 확증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사람들에게서 의혹의 눈길을 받아오던 마리아, 그래서 잔뜩 의기소침해있던 마리아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신비스런 비밀을 이해해준 엘리사벳의 격려와 지지를 받고 크게 기뻐합니다.

 엘리사벳의 이런 위로는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 힘겨워하던 마리아에게 다시금 새 출발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마리아는 괴롭기 그지없지만 다시 한번 용기를 냅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고달프고 막막하겠지만 주님과의 십자가 길을 힘차게 내딛습니다.

 루가 복음사가는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요한을 잉태한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 상봉하는 장면을 아주 힘차고 장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적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그들의 상봉은 참으로 희극적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진 미혼모 마리아는 불러오는 자신의 배와 따가운 이웃들의 눈총이 너무도 부담스러워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한편 엘리사벳은 또 누구였습니까? '야! 정말 대단하다! 저런 나이에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니!'하고 사람들이 뒤에서 손가락질할 정도로 나이가 많던 할머니였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두 여인이 서로 만나 기쁨의 노래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인간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만남과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의 성령께서 그들 만남에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심으로 인해 희극적 만남은 참 기쁨의 만남, 설렘의 만남, 영광의 만남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뒤집는 분이십니다. 메마름을 생명력으로, 무의미를 의미로, 좌절감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시는 분 그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숱하게 겪는 이해하지 못할 갖은 일들, 억울한 일들,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며 해결되리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평화신문 발췌 (www.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