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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주님 발치에 앉아서

김대철대철베드로 2004. 7. 28. 08:48
[생활속의 복음]주님 발치에 앉아서
782 호
발행일 : 2004-07-18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과 한 산골마을로 피정 겸 소풍을 갔을 때 일입니다. 꼭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바빠지는 제 천성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흘이나 되는 일정이어서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음에도 떠나기 전날 오후에야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시장도 봐야 했고, 장거리를 뛰기 위해 차도 점검해야 했습니다. 밤 11시가 돼서야 피정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니 벌써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쳤지요. 소형버스에 아이들을 빼곡히 태우고 시동을 거니 마음이 다 뿌듯해졌습니다. 정체가 심한 시내를 빠져나와 막 속도를 내려는 순간, 미사도구를 챙겨오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음 인터체인지에서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지요. 차에서 내린 저는 다급한 마음에 수도원 소성당 문을 박차고 제의방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습니다. 소성당으로 뛰어든 순간, 저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성당에는 저희 주방 자매님께서 홀로 앉아계셨습니다. 평화롭게 성체조배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자매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제 마음에서는 '쿵' 하는 소리가 다 들려왔습니다.

 아이들 먹여 살린다는 핑계로 늘 나돌아만 다녔기에 주님 앞에 차분히 앉아본 적이 벌써 오래 전 일이었습니다. 말만 수도자(修道者)지 수도(修道)를 위해 거의 시간을 내지 않은 제 모습, 세상사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아온 제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주님께 나아가는 주방 자매님의 영적 삶과 일 중독에 빠져 잠시도 주님 발치에 앉지 못하는 제 부끄러운 삶의 모습이 극명하게 교차되면서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로 말만 수도자지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공동체 기도를 빼먹지 않는 것만 해도 정말 다행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기도할 시간이 너무도 부족합니다. 가끔씩 피정 강의라도 하러 갈 때면 눈을 반짝이며 앉아 계시는 신자들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마르타는 지극한 정성으로 온 몸을 바쳐 예수님을 섬기던 여인이었습니다. 마르타는 단순하고 소박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을 자잘한 일상사 안에서 구체적 행동으로 표현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 의복은 대체로 마르타의 손을 거쳐 세탁되었고 다림질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마르타는 예수님 건강을 위해 셀 수도 없이 많은 소꼬리 곰탕을 끓여다 날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 봉사로 예수님을 섬기던 마르타, 온 몸을 다해 예수님을 추종하던 열렬한 팬 마르타보다는 그저 조용히 예수님 발치에 앉곤 하던 마리아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십니다. 마리아는 마르타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독특한 팬클럽 회원이었습니다. 예수님 말씀과 행적, 인품에 완전히 매료된 마리아에게 이제 예수님은 삶의 최종적 의미요, 존재 이유가 되었습니다. 자나 깨나 예수님 생각이었습니다. 적당히 하면 좋은데 때로 너무 지나치다 보니 언니 마르타에게서 자주 질타와 견제를 받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 식탁에 앉으셨을 때 일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르타는 즉시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예수님 일행을 위한 손님 접대에 여념이 없었지요. 예수님과 제자 일행의 수효가 상당했기에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손님접대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마리아의 관심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 가까이에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더 들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그것만이 지상과제였습니다.

 오늘 마리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예수님의 발치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지극히 예언적 모습입니다. 그분 발치에 앉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께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극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너무도 좋기에, 그분 말씀이 꿀보다 더 달기에 마리아에게는 그분 발치에 앉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습니다. 음식 준비나 접대, 갖은 세상살이보다는 그분 앞에 앉는 것, 그분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가치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파악한 마리아였기에 다른 모든 부차적인 것을 다 포기합니다. 그리고 그분 발치에 앉습니다. 머지않아 떠나가실 예수님과 단 일초라도 더 함께 보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