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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활제4주간목요일(100429.목)

김대철대철베드로 2010. 4. 29. 00:52

<부활 제4주간 목요일>(2010. 4. 29. 목)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요한 13,18).”

 

언젠가 라디오에서,

어버이날 하루만 효도하는 척 하고,

그날이 지나면 다시 불효자식으로 돌아가지는 않는지 반성하자......

못을 박을 곳이 없어서 그렇게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아야 하는가?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일 년 365일 날마다 효도를 잘 하고 있다면 사실 어버이날은 없어도 됩니다.

효도를 안 하니까 어버이날을 만들어서 억지로 효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린이날도, 스승의 날도, 또 무슨 무슨 날들도... 다 그렇겠지요.)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성금요일 하루만 회개하는 척 하고,

그날이 지나면 다시 도루묵이 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절을 지냈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다는 것.

 

한 번 부활절을 지내고 나면,

다음 사순절 때까지는 십자가를 잊고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에 어떤 본당 주보에서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이 십자가의 길에 대해서 질문하고

그 본당의 원장 수녀님이 답변해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답변 내용이 전반적으로 좋기는 했는데......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니까,

모든 주일에는 십자가의 길을 바치면 안 된다, 라는 말이 들어 있었습니다.

오 마이 갓. 안 되긴 뭐가 안 됩니까? 안 되는 기도가 어디 있습니까?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 임종경을 바치면 안 되지만......)

 

물론 사순시기 외에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공동 전례로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하고 싶고, 해야 한다면 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는 일은 사순시기에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시기에도 해야 하고, 주일에도 해야 하고, 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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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요일이 아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해봅니다.

가시관과 채찍질과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히는 고통과

십자가에 매달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을 상상합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냥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엄청난 것이었다고 해도 예수님만 겪은 것은 아닙니다.

그 시절에는 십자가형이 흔히 있었던 일이었으니......

 

그리고 사도들과 순교자들이 당한 고문과 처형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육체적인 고통이 가장 심한 것이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한 것, 바로 정신적인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당한 모욕감, 절망감, 고독감.... 그런 것들보다도,

가장 큰 고통은 바로 배신감이 아니었을까...

 

유다만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이 체포될 때 그냥 도망가 버렸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면전에서 부인했고,

예수님 덕분에 병이 나은 사람들,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도 상당수,

아마도 배반자 무리에 합류했을 것입니다.

 

요즘 자꾸만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는데,

중병에 걸렸다고, 장애자가 되었다고, 어떤 고통을 겪고 있다고 다 자살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자살 동기 중에 가장 큰 것은 희망을 완전히 잃은 것, 그것일 것입니다.

희망을 완전히 잃었다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희망을 잃는 것보다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이 될 것입니다.

 

주변에 믿을 사람 하나 없을 때,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을 때,

그때 사람들은 쉽게 무너져버립니다.

특히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했을 때......

그래서 인간이라는 족속에 대해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을 때.

 

구약성경에서 가장 큰 범죄로 되어 있는 것은 하느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는 죄입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간음죄(간통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나 이단에 빠지는 것은 곧 하느님을 배신하고 바람을 피우는 것.

바로 그것을 하느님께서 가장 혐오스러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인간들의 배신을 가장 고통스러워하셨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유다는 그 배신의 정점을 찍은 사람이고.......

 

지난 이천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천여 번의 부활절을 지냈지만

예수님은 아직도 여전히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고

우리는 십자고상의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아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믿은 적도 없으니 배신할 일도 없는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만이 배신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배신할 분이 아니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을 배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믿어 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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