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부활제4주간수요일(100428.수)
<부활 제4주간 수요일>(2010. 4. 28. 수)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요한 12,50)”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누군가를 칭찬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가끔 하신 칭찬도 대체로 이방인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해서는 독설에 가까운 비판을 퍼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칭찬에 인색하셨던 것일까?
처세술이나 융통성이나 사교성은 아예 없으셨던 것일까?
예수님은 낮은 자들에게는 온유하고 자비로우신 분이셨지만,
바리사이들과 논쟁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 아주 강경하고 단호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흔히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기 있는 명강사들의 강의를 들어보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서 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니까 그 말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기 있는 명강사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다 돌아서서 가버렸으니......
그렇다고 해서 가끔은 듣는 사람들 입장도 좀 생각하고,
사람들의 비위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고 예수님께 충고해야 하겠습니까?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과 비위를 맞춰 주는 말은 구별해야 합니다.
거짓 칭찬은 그냥 거짓말입니다.
예수님께 거짓말도 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상처 받는 것을 피하려면 아예 안 들으면 됩니다.
(말로써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불편하다고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해도 그것은 꼭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말씀이 아니고 우리를 살리는 말씀입니다.
강론을 하는 이들에게 이런 점은 항상 숙제가 됩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과 꼭 들려주어야 할 말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강론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말과 꼭 해야 할 말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인간의 말은 최대한 줄이고 하느님 말씀만 전할 수는 없는 것일까? 라는... 숙제.
(사람들이 듣기 싫어해도 해야 할 강론을 하는 것은 참으로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