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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순제4주간토요일(100320.토)

김대철대철베드로 2010. 3. 19. 22:37

<사순 제4주간 토요일>(2010. 3. 20. 토)

 

<예수님>

 

춘향전을 생각해봅니다.

저는 춘향이의 사랑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춘향이가 곤장을 맞으면서도 절개를 지키는 모습보다는

이몽룡이 거지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를 걱정하고,

월매에게 이몽룡을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곤장을 맞으면서도 절개를 지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때 춘향이는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서 내려오기를,

또는 최소한 변사또보다 높은 사람이 되어서 내려오기를 고대하면서

그 고통을 견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몽룡은 정말 보잘것없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춘향이의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춘향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몽룡이 거지 모습으로 나타난 후에는

춘향이는 부귀영화를 바라고 절개를 지킨 것도 아니고,

이몽룡을 “위해서” 절개를 지킨 것도 아니고,

이몽룡과 “함께 하기 위해” 절개를 지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 시절 진짜 성실한 암행어사들은

임무를 수행할 때 가장 낮은 백성의 모습으로 변장했습니다.

그들은 변장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낮은 백성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렇게 해야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 낮은 백성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수난과 죽음을 당하셨다고 표현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수난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행군을 할 때,

쫄병들이 걸어갈 때 보통 지휘관들은 찝차를 타고 갑니다.

만일에 가다 지쳐 쓰러지는 병사가 있을 때,

그 쫄병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자기 찝차에 태워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그런데 처음부터 쫄병들과 함께 걸어가는 지휘관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 지휘관이 진짜로 존경을 받게 됩니다.

고난을 함께 한다는 것은, 고난을 없애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입니다.

 

복음 말씀에서,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라는 경비병들의 말......

그들은 예수님의 그 “함께 하는” 사랑을 느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높은 곳에서 가르치려고나 하는 율법학자가 아니라,

아주 밑바닥까지 내려와서 우리와 함께 하려는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렇게 낮은 곳으로 내려와서 우리와 함께 하는 분이 아니라,

저 높은 곳,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나타나는 그런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들도 그렇게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겉으로 보잘것없게 보이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많은 자비를 베푸셨지만 그 이상으로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배가 고팠기 때문에 예수님도 굶주림을 겪었고,

사람들이 울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로병사 인생살이 고통을 그대로 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이 겪으셨습니다.

 

누군가 굶고 있을 때 정말 사랑을 실천하려면,

함께 굶거나, 함께 배부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자기가 배부르게 먹고 남은 것을 조금 나누어주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 아파할 때 정말 사랑을 실천한다면

함께 안 아플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함께 아프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자기는 아픔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아픈 사람에게 진통제만 주는 것은

많이 부족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누어서 바칠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바쳐야 할 것입니다. 헌금이든 시간이든......

 

예수님을 “위해서”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생색만 내고 끝나버릴 수도 있으니...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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