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Catholic/그분과 함께..
[신앙의 눈으로 본 중학수학] 극한 그리고 하느님
김대철대철베드로
2005. 1. 2.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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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섭(요셉, 하남 최선수학전문학원 원장)
평화신문이 신년기획으로 '신앙과 함게 배우는 중학수학 특강'을 마련했습니다.
'수학과 신앙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최근 학원가에서 주목받고 있는 윤지섭(요셉) 원장이 강사로 나섭니다. 수학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중학생, 기초가 부족해 수학을 어려워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수학과 신앙이 닮았다'고 말한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사실 신앙생활이 하느님 진리를 향한 '가슴의 여정'이라면, 수학은 세상에 숨어 있는 옳은 답을 향한 '지성의 여정'이다. 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수학은 가슴으로 완성되고, 진정한 신앙은 합리적 이성으로 보완된다.
수학과 신앙은 똑같이 '정답'(신앙은 삶의 정답, 수학은 문제의 정답)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제 길로 찾아갈 때만 옳은 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원리도 닮았다.
얼마전 한 신부님한테서 '수학을 잘 해야 철학을 잘 할 수 있고, 철학을 잘 해야 신학을 잘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수학을 전공하는 나로선 수학에 들어 있는 무수한 철학적 상념들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수학이 단순히 숫자 나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간단한 극한값을 구해보자. ' '. 복잡하게 보인다. 하지만 텔레비전 리모콘을 조작하는 일보다 더 쉽다. 앞 부분 lim(리미트)는 극한을 뜻하는 약자로, '한없이 커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아랫부분 ∞는 '무한대'라고 읽는다. 결국 ' '란, χ가 무한히 커질 때 1/χ은 어떤 값에 한없이 가까이 가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간단하다. 여기 1/χ이 있다. 그럼 χ가 2일때 1/χ은 무엇이 되는가. 1/2이다. 마찬가지로 χ가 4일때 1/χ은 1/4, χ가 100일때 1/χ은 1/100, χ가 1000일 때 1/χ는 1/1000…. 결국 χ가 무한대로 커진다고 했으니까, 1/χ은 점점 0에 가까워지며 작아진다. 사과를 칼로 자르는 것과 같다. 사과의 1/2, 1/4, 1/100, 1/1000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반으로 자르고, 또 그 반을 자르고…. 이론상으론(나중엔 엄청난 정교한 칼이 필요하겠지만) 사과는 무한히 자를 수 있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과 같다.
여기서 χ가(가로축) 무한히 커질때 1/χ(세로축)은 0을 향해 한없이 다가간다. 1/χ은 0이 될 수는 없지만 한없이 그리고 또 한없이 0에 접근(수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 0에 수렴한다. 이제 알았다. 시험문제에 이 극한값( )을 묻는 질문이 나오면 자신있게 정답을 '0'이라고 쓰면된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0을 향해 '영원히' 다가가지만 0에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학을 단순히 계산이나 수식 정도로 생각해서는 재미가 없다. 수학에 담겨 있는 철학적 상념들을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수학을 머리로만 공부하지 말고, 마음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음악이나 그림을 감상하려면 귀를 열고 눈을 떠야 한다. 수학도 적극적으로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어려운 수식들을 초등학교 고학년 혹은 중학교 저학년 수준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려 한다. 중고등학생들이 평화신문을 통해 수학의 근본 원리는 터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성인들도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했던 수학의 옛기억을 더듬어 보는 쏠쏠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는 학문인지를 보여주고 싶다.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루가 17,6) 하고 말씀하셨다. 믿음 하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 믿음은 나를 비우는 것이며,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낮추는 행위다.
우린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무한대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고 믿음(가로축 χ)의 값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그럴때 비로소 나는 온전히 0을(비움) 향해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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