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나눔 Life Story/대한민국역사 (History of Corea)

고구려의 지명 - 1 - 행주, 고양, 수원, 사천

김대철대철베드로 2004. 11. 29. 23:31
행주·고양 (幸州·高陽, Hangju ·Goyang)

고려 의종 때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는 경북 동해안의 영해·영덕·임하·청하까지도 고구려 땅으로 넣고 있으며, 고구려 땅이 가장 넓었을 때 모습을 보여준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세 나라 땅 나누기가 어느 때 사정을 보여 주는지 짚어 보자. 지리지 권 37에는 고구려 22대 안장왕(서기 519~531년 재위)의 활약을 적은 것이 눈에 띈다. 행주산성이 있는 행주(幸州)는 고구려 때 왕봉현(王逢縣) 또는 개백현(皆伯縣), 우왕현(遇王縣)이라고 하였으며, ‘한씨 미녀’가 안장왕을 맞은 곳이라고 한다. 행주 북쪽 고양시(高陽市)는 고구려 때 달을성현(達乙省縣)이었는데, 미녀 한씨가 산마루에서 봉화를 올려 안장왕을 맞은 곳으로, 고봉현(高烽縣)이라고도 한다.

고구려 때 남쪽으로 땅을 가장 많이 넓힌 이는 19대 광개토대왕이다. 이 판도를 뒤집은 이가 신라 진흥왕인데, 삼국사기 지리지의 세 나라 영역은 진흥왕이 땅을 넓히기 전의 것으로 보인다. 진흥왕이 세운 ‘순수비’들의 연대가 6세기 중반에 몰려 있어 안장왕이 임금으로 있던 때를 머릿속에 넣으면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타난 세 나라의 땅은 6세기 초엽에서 중엽의 것으로 짐작된다.

고구려 때 행주의 이름은 ‘가이맞이’였다. 고구려말로 임금(왕)을 ‘가이’(皆) 또는 ‘가이치’(皆次)라 하였는데, 부여의 벼슬 ‘가’(加)와 통하고, 조선 때 광주에서 찍은 ‘천자문’에 나타나는 ‘개자(둘다 아래아)/긔차(아래아)’(王)는 고구려 말을 이은 것이다. 고양의 옛 이름은 ‘달솔’, 곧 ‘높은 봉홧불’이었다. 고구려 말에서 ‘달’은 ‘산’(山)과 ‘높은 곳’(高)을 가리키며, ‘솔’(烽)은 ‘(불을) 사르다’라는 말의 옛 모습이다.

수원·사천 (水原 ·泗川, Suwon·Sacheon)

땅이름에 자주 쓰이는 글자에는 물(水)과 관련된 말이 있다. 경기도 수원시(水原市)는 고구려 때 매홀군(買忽郡) 또는 수성군(水城郡)으로 불렸으며, 통일신라 때 수성군, 고려 때 수주(水州)였다가 조선 때부터 수원으로 굳어졌다. 경남 사천시(泗川市)는 삼국 때 사물(史勿), 통일신라 때 사수(泗水), 고려 때 보주(甫州), 조선 때 사천(泗川)으로 되어 지금에 이른다.

옛 땅이름에서 水(수)는 川(천), 買(매), 勿(물)과 자주 갈려 쓰였다. 이들이 어찌 읽혔는지 뚜렷지 않으나 통일신라 때부터 고친 이름에서 侮(모), 武(무), 務(무), 汶(문), 宗(마라)으로 갈려 쓰인 것을 보면 ‘물’(水)은 고대에 ‘무, 물, 모, 마라’ 따위로 넓게 불렸던 것 같다. 광개토왕릉 비문에서는 ‘-모로’(模盧)로 끝나는 땅이름이 많은데, ‘물’과 잇닿은 이름으로 보인다. 곧, ‘물’의 고구려 말은 ‘모로’가 제 모습인 듯하다.

고구려말 ‘모로’는 중세국어 ‘믈’, 현대의 ‘물’, 몽골말 ‘뫼렌’, 거란말 ‘뮈렌/모론’(木連), 여진·퉁구스말 ‘무/모’, 일본말 ‘미즈’ 따위와 견줄 수 있는데, 두루 알타이말 울타리에 든다. 삼국 때 ‘물’이 강이나 하천을 가리키는 것은 몽골이나 거란에서와 마찬가지다. 물에 대한 신라말이나 백제말은 고구려말 ‘모로’보다 줄어 ‘몰/물’, ‘모/무’로 바뀐 모습으로 여진·퉁구스말과 닮았다. 몽골·만주·거란말의 이름씨 끝에는 ‘-ㄴ’이 덧붙는데, 이런 형태가 있는 말과 없는 말로 알타이 말들은 다시 나누기도 한다.

고구려 땅이었던 수원의 옛이름은 ‘모로골’, 가야(=신라)땅이었던 사천은 ‘시몰/시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제공 :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